33개월 만이다. 이산가족의 애달픈 만남이 아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담이 거의 3년 만에 이뤄질 모양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어제 긴급 영수회담을 제안하자 청와대가 "늘 정치권에 열려 있다"고 화답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정치행위이자 효과적인 대국민 소통수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논의 결과보다 만남 여부가 주목을 받고 사진 찍는 데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 권력을 잡은 정부나 권력을 잡으려는 야당이나 정작 권력의 주인인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은 탓이다.
지금 민초의 삶은 팍팍하다. 기말시험을 치르는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촛불을 켰고, 믿고 맡긴 저축은행에 돈을 떼이게 된 서민들은 울부짖고 있다. 일자리는 구하기 어려운데 장바구니 물가와 전ㆍ월세는 치솟고, 급한 김에 카드로 막은 빚을 포함한 가계부채는 위험수위다. 한동안 잠잠했던 노사분규가 고개를 들고 있고, 얽히고설킨 사법개혁 논란과 냉랭한 남북관계,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 등 현안이 쌓여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손 대표의 회담은 지난 2월에도 추진됐지만 의제와 형식에 합의하지 못해 무산됐다. 이번에는 손 대표가 먼저 민생을 의제로 적시했고 이 대통령도 "민생을 걱정하는 건데 토 달 이유가 없다"며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는 뜻을 전했다. 우리는 여기서 '민생이라면'이란 전제에 주목한다. 비록 늦었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화급한 민생에 대한 해법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여야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무상' '반값' 시리즈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도 국가의 장래를 생각해 두 사람이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2월 이 대통령이 신년 TV좌담에서 영수회담 추진 의사를 내비치자 손 대표는 청와대에 '진정성'과 '열린 자세'를 요구했다. 이번에 손 대표가 회담을 제안하자 청와대는 자신들은 열려 있다며 민주당의 '진정성 있는 접근'을 주문했다. 서로 상대방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형국이다.
청와대나 야당이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할 대상은 '국민'과 '민생'이다. 국민과 민생을 향한 진정성을 갖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소통이 되겠지만 진정성 없이 서로 정치적 손익을 계산하며 머리와 머리가 만나면 국민에게 두통만 안겨줄지 모른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