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조광래 대표팀 감독은 2011 아시안컵 이후 자신이 원하는 축구에 대한 '3단계 진화론'을 설파한 바 있다. 1단계는 미드필드에서의 강한 압박과 패싱 게임, 2단계는 중원을 넘어 공격진영에서도 1단계 플레이가 펼쳐지는 것이다. 최종 완성본은 상대 문전 25m 이내 어디서든 골을 노릴 수 있는 수준의 축구다.
3일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은 조 감독의 진화론 속 '만화축구'의 현 위치를 정확히 짚어준 한판이었다. 완성형에 가까워진 1단계를 넘어 다음 과정으로의 진보가 눈에 띄었다. 전방에서부터 물샐틈없는 압박, 문전 2대1 플레이 등 빠른 템포의 패스를 동반한 공격이 돋보였다. 중앙에서의 볼배급에는 다채로움이 부족했지만, 측면에서의 유기적인 호흡과 날카로운 패스가 이를 상쇄해줬다.
특히 김영권의 결승골 장면은 패싱게임의 백미였다. 오른쪽 차두리의 오버래핑을 향한 박주영의 감각적인 로빙패스, 이어진 땅볼 크로스를 이근호과 흘려줬고 어느새 반대편에서 달려든 김영권이 왼발 슈팅, 골망을 갈랐다. 세르비아 수비진은 속수무책이었고 조 감독은 환호했다.
조 감독 역시 아시안컵을 통해 1단계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터뜨린 꽃망울은 이제 조금씩 열매로 여물기 시작했다. 그는 세르비아전을 2단계의 출발점으로 정의했다.
이날 경기 후 조 감독은 "3월 온두라스전까지만 해도 중원에서 게임을 지배하는 패싱 플레이를 강조했다"며 "오늘은 공격에 빠른 침투 패스를 연결하도록 했다. 덕분에 전반전에 공격으로 나가는 템포가 빨라졌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태극전사도 이구동성으로 '조광래 만화축구'의 진보를 얘기했다. '캡틴' 박주영은 "생각이상으로 패싱 플레이가 좋았다. 온두라스전보다도 나았다고 생각한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청용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전반전은 감독님은 물론 선수들도 모두 만족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높아진 자신감도 고백했다. 그는 "이제 (박)지성형과 (이)영표형은 없지만 이대로만 간다면 감독님이 원하는 경기를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며 힘주어 말했다.
이날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원숙한 기량을 보인 기성용은 냉정하면서도 고무적이란 태도를 보였다. 그는 "아쉬운 점은 있지만 선수들이 하고자 했던 플레이를 했다.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100% 만족시키진 못했지만 아시안컵 이후 상당히 좋아졌다"며 가능성을 얘기했다.
주축선수가 대거 빠졌지만 세르비아는 결코 만만치 않은 유럽의 강호였다. 그런 상대를 손쉽게 넘어섰다. 적장 블라드미르 페트로비치 세르이바 감독조차 "한국은 어느 유럽팀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단단함을 느꼈다"며 높이 평가했다. 그만큼 '만화축구 2단계'의 시작은 인상적이었다.
물론 과제도 있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세르비아전의 전반적인 경기력은 흠잡을 데 없었다"면서도 "전방 박주영까지 연결되는 공격이 조금 더 날카로워졌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를 위해 미드필드에서 조금 더 다양하고 빠른 패스를 공급하거나, 박주영이 조금 내려와 공을 잡았을 때 2선에서 적극적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7일 가나전은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이상적인 실험무대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가나 대표팀은 어쩌면 2010 남아공월드컵 8강 때보다도 좋은 전력을 갖췄다고 볼수 있다"며 "세르비아가 1.5군이었다면 가나는 0.9군 정도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덧붙였다. 그만큼 '만화축구 2단계'의 현 위치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경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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