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간 선수 중복 차출 논란을 놓고 지난 9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직접 나섰다.
두 팀 모두 뛸 수 있는 선수 가운데 구자철(볼프스부르크), 김보경(세레소), 지동원(전남)을 올림픽팀에 배정했다. 반면 홍정호(제주), 김영권(오미야), 윤빛가람(경남)은 A대표팀에서 차출되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는 6월에만 한정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장의 논란은 봉합됐지만 뭔가 석연찮은 뒷맛이다. 분배의 타당성은 차치하더라도, 마치 기술위원회가 선수 선발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듯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감독이 선수 선발의 전권을 갖는다는 기존의 '상식'과도 배치된다.
규정을 살펴보자. 대한축구협회 정관 47조 1항에는 기술위원회의 설치 목적에 대해 '축구기술과 관련된 제반업무를 관장하는 주무기관으로서 국가대표급 지도자와 선수의 선발, 선수와 지도자의 양성, 기술 분석 등을 통한 축구의 기술발전을 목적으로 설치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선수 선발 권한은 명확하지 않다.
기술위원회의 기능을 다룬 2항도 마찬가지다. '선수 선발과 관련된 업무의 검토 및 건의'라고만 한정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할 뿐, 결정권이 있다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지난해 7월 조광래 감독 인선 당시 "기술위는 감독을 뽑을 권한만 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선발은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이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기술위원회는 이번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선수 차출 논란에 대해 마치 결정권이 있는 기관처럼 결론을 내려버렸다.
갈등이 불거질 당시 허정무 인천 감독은 해결방안으로 기술위원회의 적극적인 개입 필요성을 설파했다.
"각급 대표팀에 중복 해당되는 선수 리스트를 작성한 뒤, 1차적으로 기술위원회가 각 선수에 대해 현재 기량과 대표팀 활용도, 선수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그 결과물을 각급 대표팀 감독에게 제시하고, 이후엔 감독 사이에 대화를 통해 조율하고 결정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그는 2000 시드니올림픽과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각각 지휘봉을 잡은 경험이 있는 인물. 그렇기에 누구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그 역시도 어디까지나 중재자로서의 기술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했을 뿐, 결정권자는 감독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이번 기술위원회의 처사는 규정을 넘어선 월권행위로도 비칠 수 있다.
기술위원회가 내린 '결정'은 어디까지나 중재안으로 남아야 한다. 최종 결론은 각급 대표팀 감독의 몫이다. 이번에는 그 과정이 철저히 무시됐다. 조광래 감독이 "당사자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선수를 정해주는 경우가 어디에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조 감독은 "원래 지동원과 김보경 다 내주려고 했다. 그래서 이천수(오미야)와 정조국(AJ오세르)을 체크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내가 국가대표 선수를 독차지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게 그런 권한은 없다. 이번 두 번의 A매치를 제외하고 일정이 겹치지 않는다면 모두 데려다 써도 괜찮다"며 강조하기도 했다. 충분히 감독 간 협의로 풀어갈 수 있는 실타래가 더 꼬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명보 감독도 일종의 피해자다. 기술위원회가 통보하듯 결론지어버린 탓에 조 감독과 불편한 상황에 놓여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기술위원회의 역할과 권한에 명확하게 선을 긋고, 각급 대표팀 감독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힘쓸 필요가 있다. 나아가 효율적인 대표팀 운용과 선수 관리를 위해서라도 선수 차출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대표팀 운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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