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총리 지진이 살렸다
[아시아경제 이의원 기자]
"쓰나미의 피해가 얼마나 엄청난지 느꼈다. 정부의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고 각료들은 전력을 다하라"
외국인인 재일 한국 동포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 정치생명이 위기에 몰렸던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지난 11일 발생한 일본 대지진으로 기사회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지진 발생 당일 긴급 담화문을 발표, "서로 도와서 이 위기를 이겨나가자"고 호소한데 이어 다음날 헬기를 타고 현장을 둘러본다음 긴급재해대책회의에서 이같이 지시했다.
간 총리는 또 자위대 10만 명 투입,15조 엔 규모의 일본판 뉴딜정책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일본을 덮친 총체적 난국 극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했던 마에하라 일본 외상이 정치 헌금을 받아 낙마한데 이어 간 총리 또한 재일교포로부터 정치헌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정치생명이 위기에 봉착했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간 총리는 지난해 6월 총리로 취임했지만 이후 그는 거의 살얼음판 위를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후텐마 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최악의 상황까지 간 미ㆍ일 동맹을 회복시키고, 민주당 오자와 전 간사장을 물러나게 한 원인이던 정치자금 관리를 통한 국민신뢰 회복,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복원,경기회복 등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소비세 인상발언으로 그는 집권 한 달만에 있었던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했다. 국민의 지지율은 땅에 떨어졌다. 아사히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간 총리의 지지율은 20% 미만으로 지난해 9월 그가 내각을 꾸렸을 당시 지지율(67%)의 3분 1도 채 되지 않는다.
경제문제는 그를 더욱 괴롭혔다.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00%에 육박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일본의 부채를 이유로 들어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실업률은 여전히 4.9%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는 무기력하게 퇴진할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재도약할지를 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그런데 그는 적극 나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4일 "지난 2005년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카트리나 사태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은 미흡한 대응을 해 지지율이 급락했다"면서 "간 총리가 적극적인 행보를 계속한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위기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오쿠무라 준 고문은 "지금은 간 총리에게는 카트리나가 덮친 순간과 같다"면서 "그러나 그는 약한 지도자가 아니며, 야당도 계속 반대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캔버라 소재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의 일본정치학 교수 아우렐리아 조지 멀갠은 "이번 지진이 간 총리를 정치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면 끝"이라고 경고하면서 "이번 위기는 간 총리 내각을 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의원 기자 2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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