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안혜신 기자] 물가 급등으로 고민하고 있는 이머징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식품 가격 상승 억제에 나서고 있다. 치솟는 물가가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부터 악천후가 이어진데다 농업에 대한 투자가 줄면서 인도의 밀·쌀·양파는 물론 인도네시아 칠리(매운 향신료), 중국 시금치 등 모든 식품가격이 급등했다. 여기에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의 낮은 금리로 인해 원자재에 투자가 몰린 점도 식품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시카고선물거래소에서 대두 가격은 지난 6개월간 46% 이상 상승, 부셸당 14달러를 기록 중이며 같은 기간 설탕 가격 역시 34% 올랐다.
영국 정부 싱크탱크인 포어사이트는 지난 25일 '세계 식량 및 농업의 미래'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곡물가격이 향후 40년간 50~100%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곡물 공급량이 치솟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식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높은 물가로 시름하고 있는 아시아국가들은 앞다퉈 식품 가격잡기에 나서고 있다.
인도는 이번 달 초 식용류와 렌틸(인도 콩) 등에 대한 수출 금지조치를 확대했다. 또 양파값이 4배 이상 폭등하면서 앙숙인 이웃나라 파키스탄으로부터 1000톤(t)의 양파를 수입하기도 했다. 한국은 일부 식품에 대한 수입관세를 인하했으며 인도네시아는 정부 차원에서 칠리 생산을 장려하고 나섰다.
또 인도네시아는 지난 20일 식품가격 상승을 저지하기위해 밀·대두·비료·사료 등 50개 이상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를 철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내달부터 팜유 수출세를 기존 20%에서 25%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밖에 3조루피를 투입, 식품가격 변동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를 지원할 계획이다.
마리 엘카 팡세추 인도네시아 무역부 장관은 "지금 취한 조치들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각국 정부의 식품가격 통제 조치가 시장을 교란시키고 농작물 생산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세계은행(WB)과 국제연합(UN)등은 정부가 농업 인프라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을 권장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은 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보다는 금리 인상 등을 통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부터 두 차례 금리를 인상한데 이어 지난 15일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올리겠다고 밝혔다.
인도 역시 전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치솟는 물가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동시에 3월까지의 물가상승률 전망치 역시 기존 5.5%에서 7%로 상향했다. 금리인상으로 인한 물가잡기가 사실상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이처럼 금리인상 등 긴축 통화정책이 사실상 식품가격 통제에는 실효성이 없어 인도·이집트·중국 등이 시행하고 있는 쌀 수출 금지 등의 조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프레드릭 뉴만 HSBC 글로벌리서치 부문 공동대표는 "지난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식량대란이 재발할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망설이다 행동을 늦게 취할 경우 쌀값이 다시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각국 정부의 기민한 대응에 힘입어 이번 곡물가격 상승으로 우려하는 '2차 식량대란'까지는 촉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은 지난 13일 금리인상을 포함한 인플레이션 억제 대책을 내놨으며 멕시코는 지난해 12월부터 선물 시장에서 주식품인 토르티야(전병)의 원료 옥수수 매입을 시작했다. 중국 역시 지난해 11월 필요시 시장개입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으며 인도는 80일분 이상의 밀을 비축해둔 상태다.
안혜신 기자 ahnhye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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