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남성이 처제와 맺은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6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1992년 부인과 사별한 박모씨는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의 집에 드나들며 자녀들을 돌봐주던 부인 친동생 김씨와 1993년부터 한 집에 살았다. 본처 생전 처제이던 김씨와 부부의 연을 키워가던 A씨는 1995년부터 동료들에게 김씨를 부인으로 소개하는 등 본격적으로 부부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김씨는 박씨 집으로 전입신고까지 했다.
국립대학 교수이던 박씨는 지난해 1월 사망했는데, 2003년 일을 그만둔 뒤 퇴직연금을 지급받고 있었다. 이에 김씨는 자신이 박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으므로 유족에 해당한다며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유족연금 지급을 신청했고, 공단이 "박씨는 김씨와 인척 관계여서 당시 민법상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대법원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김씨가 낸 소송 상고심에서 1심과 항소심 재판부의 원고 승소 판결을 지난달 25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씨와 김씨의 사실혼 관계가 가족과 친인척을 포함한 주변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점, 약 15년 동안 부부생활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형성됐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들 관계의 반윤리성이나 반공익성이 혼인법질서에 본질적으로 반할 정도라고 할 수 없다"면서 "원심 판결에 법리 오해 등 위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성지용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김씨와 박씨가 14년 동안 사실상 부부로서 공동생활을 해온 점, 이들의 부부생활이 박씨 자녀들과 친척들에게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던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이들의 관계는 반윤리성·반공익성의 요청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할 것"이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7부(고영한 부장판사)도 지난 6월 "김씨가 미혼으로 지내다가 박씨와 조카들을 위해 가정살림을 돕던 중 가족처럼 한 집에서 살았고 14년 동안 부부로 생활한 점, 가족들이 혼인 생활을 인정해온 점 등에 비춰보면 김씨와 박씨의 관계는 사실혼으로 볼 수 있다"며 김씨 손을 들어줬다.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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