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장면1. 일본 여대생 사토 노부에(20)는 도쿄 시내에 있는 자신의 방을 한국 걸그룹 관련 소품들로 가득 채웠다. 포스터는 물론 그들의 무대의상을 그대로 본따 만든 옷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걸그룹의 뮤직비디오가 담긴 DVD는 몇번이나 돌려보며 안무를 익힌다. 포미닛 포스터를 펼쳐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들의 프로필을 줄줄 꿴다. 한국어 공부에도 열심인 사토는 "뭐랄까. 한국 걸그룹은 '저렇게 되고 싶다'(なりたい)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동경심을 드러냈다.
장면2. 지난 5월. 걸그룹 카라의 일본 측 매니지먼트사인 유니버설뮤직재팬의 이시자카 케이 회장은 카라의 첫 악수회를 기획하면서 반신반의했다. 카라의 국내 소속사 관계자에게는 "되겠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일본에 데뷔도 하지 않은 그들을 데려다 뭘 기대하겠느냐는 의미였다. 하지만 악수회에는 무려 8000명의 팬들이 몰렸고 이를 본 이시자카 회장의 눈은 번쩍했다. 카라는 마침내 8월11일 일본 데뷔 싱글 '미스터'를 발매, 해외 여성 그룹으로는 30년만에 오리콘차트 톱5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바야흐로 신(新)한류시대다. 걸그룹 포미닛과 카라에 이어 지난 8월25일 소녀시대가 도쿄 한복판에서 무려 2만2000여명의 관객들을 모아놓고 첫 쇼케이스를 성공리에 마치자 일본 가요계가 들썩였다. 당초 1회로 예정된 쇼케이스는 밀려드는 팬들로 3회로 늘렸고, 소녀시대 멤버들의 의상을 코스프레한 10~20대 여성들이 공연장 밖에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 팬들은 공연을 본 뒤 "너무 귀여워서 울어버렸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소녀시대 역시 지난 8일 데뷔 싱글 '지니'를 발매해 당일 오리콘차트 5위에 올려놓았다. '지니'의 랭킹은 지난 12일 무려 2위까지 수직상승했다.
콧대높은 일본 언론들도 앞다퉈 한국 걸그룹이 몰고온 신한류 열풍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일본 스포츠호치는 "충격적인 일본 상륙"이라며 소녀시대의 일본 입성을 대서특필했고 닛칸스포츠는 "한국 걸그룹은 노래와 댄스의 퀄리티가 높다. 이들은 또 '귀엽고 멋지다'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모두 갖췄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중독되고 만다"고 전했다.
급기야 공영방송 NHK는 9시 뉴스의 톱뉴스로 무려 5분을 할애해 한국의 걸그룹 열풍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한류는 드라마를 통해 잘 생긴 남자배우들이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이젠 춤, 노래, 스타일 모든 면에서 완벽한 걸그룹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일본 연예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
NHK의 분석은 대다수 일본 언론과 연예계 관계자들의 분석과 같다.
실제로 한때 주춤했던 한류 열풍은 걸그룹들의 인기몰이로 다시 불이 붙었다. 도쿄 시부야의 한 레코드점은 K-POP의 CD 판매량이 작년 대비 3배 늘었다고 발표했다. 한류 쇠퇴기와 맞물려 고사 직전에 놓였던 한류 잡지도 다시 대형서점의 한 코너를 자리잡고 10여종 이상이 진열되어 있다.
바람은 다시 불기 시작했다. 새롭게 불어닥친 한류열풍을 찻잔 속 태풍이 아닌 지속적인 바람으로 어떻게 유지시키고 발전시킬 것인가가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
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 anju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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