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
"복리는 언덕에서 눈덩이(스노볼)을 굴리는 것과 같다. 작은 덩어리로 시작해서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끝에 가서는 정말 큰 눈덩이가 된다. 나는 14세 때 신문배달을 하며 눈덩이를 처음 만들었고, 그 후 56년간 긴 언덕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굴려왔을 뿐이다. 삶도 스노볼과 같다. 중요한 것은 잘 뭉쳐지는 습기 머금은 눈과 진짜 긴 언덕을 찾아내는 것이다."
'가치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으로 알려진 워런 버핏이 자신의 삶과 투자를 요약한 말이다. 2008, 2009년 연속 '포브스'지에 의해 세계 최고 부자 최고경영자(CEO)로 선정된 버핏은 설명이 필요없는 시장에서 나침반과 같은 인물이다.
많은 투자자들은 버핏의 시선을 함께 따라 가고, 버핏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빌 게이츠와 함께 세계 최고 부자이지만 그와 다른 것은 바로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고 조직의 성과를 이용하지도 않은 채 오로지 스스로의 투자로 부를 일궈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그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출렁이고 그가 손꼽는 기업은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그가 새롭게 발굴한 투자 대상은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가치가 된다.
100달러에서 시작해 수백억 달러의 투자신화로 전 세계의 투자 지침서로 불리는 버핏이지만 시작은 가시밧길이었다. 대공황기에 직장을 잃은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여섯살때부터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지니게 됐다.
여섯살 때부터 껌을 팔아 돈을 벌고 콜라 한팩을 사다 팔아 5센트의 이익을 남기는 수완을 발휘했다. 열한살 때 이미 주식투자를 했던 그는 청소년기 신문배달을 포함한 온갖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불려 나간다. 하지만 하버드대에 입학을 거부당해 버핏은 절망하게 된다.
그는 26세에 고향에 돌아와 투자조합을 운영해 반세기 이상 평균 2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어렸을 때부터 돈이 돈을 불리는 자본주의 원칙에 대한 차가운 통찰과 확고한 투자 원칙을 차곡차곡 체감해 나간 것이다.
결국 이런 정신적 독립심 때문에 일에 몰입하는 강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성공투자 요인 중의 하나라고 지인들은 말한다.
파리에 갔을 때 관광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 버핏이 유일하게 보인 반응은 오마하의 음식이 더 맛있다는 것 정도였다. 이렇듯 남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구애받지 않는 그는 이미 도가의 경지인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손에 꼽을 만한 인물이 바로 가치투자의 영원한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이다.
콜롬비아대학의 우수학생이었지만 조교 권유를 뿌리치고 월스트리트에 진출해 1956년 은퇴할때까지 42년간 월스트리트에서 보냈으며 대학교에서 증권부석을 강의하며 워렌버핏을 비롯한 숱한 제자들을 길러낸 인물이다.
버핏은 인터뷰때마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을 정독전엔 주식투자를 않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할만큼 가치투자를 가르친 장본인이다. 실제 아메리칸익스프레스나 디즈니 등은 가격이 가치보다 낮은 경우에만 투자한 가치투자의 계보를 잇는 사례다.
이런 버핏도 손해본 장사가 있었다. 바로 버크셔헤서웨이를 인수한 것이다. 버핏이 직물회사인 버크셔헤서웨이를 인수할 당시 충분히 저평가된 상태에서 매수했으나 인수 당시 미국 섬유산업 자체가 공급과잉으로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버핏은 버크셔 섬유파트만 따로 지난 1985년에 사업중단을 선언하며 기계나 공장을 팔았는데 저가에 사들인 섬유파트를 더 저가에 팔게 되며 투자에 오점을 남겼다.
또한 버핏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오일쇼크다. 버핏이 가장 성공적인 투자시기와 맞물린다. 1974년 전세계가 오일쇼크와 스태크 플레이션으로 시달렸지만 주식은 쌌다. 버핏은 불황을 기회로 대규모 주식을 사들여 부를 이뤘던 것이다.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1987년 10월 19일 검은 월요일이라 부르는 금융시장의 몰락에 대한 것이다. 검은 월요일이 발생하기 전인 8월 12일 소유주식을 여간해서는 팔지 않던 그가 버크셔의 주식포트폴리오 모두를 매각하는 결단을 내렸다.
월스트리트의 야만성과 부도덕성이 만들어낸 주가 상승의 붕되를 확신했던 것이다. 이처럼 시장추락의 징후에 대한 버핏의 통찰력을 알수 있는 사례다.
버핏이 본격적으로 투자 활동에 뛰어 들기 오래전, 그는 대학 파티에 참석하면 으레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수십 명의 학생들에 둘러싸여 그들에게 '우주'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수 년 후 그들이 월스트리트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박하고 털털한 버핏은 어렵고 복잡한 금융지식을 날씨 이야기를 하듯 쉽게 설명했다.
뮤추얼펀드의 귀재 피터 린치가 1980년대에 버핏을 방문했다가 그의 서재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지만, 소박하게도 금속 파일캐비닛에 알파벳 순서대로 책을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핏은 예술품도 수집하지 않았고 호화로운 자동차도 구입하지 않았다. 또한 여전히 사무실 근처의 평범한 주택에서 살고 있으며 햄버거를 즐겨 먹는다.
일 할 때 기쁨과 열정을 느낀다는 그는 그 곳을 자신의 '캔버스(canvas)'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곳에서 자신의 거래비법을 밝히거나 자화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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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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