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없이 승승장구한 만큼 깊은 조정은 감당하기 힘들지도
얼마전에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초ㆍ중ㆍ고등학교 모두 반장을 도맡아 하던 친구는 어디 한군데 나무랄 데 없었다. 누구나 가고 싶어하던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더니 졸업과 동시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엄친아(엄마친구 아들)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얼마전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술만 연거푸 마시는 이 친구를 보니 상처가 꽤 깊었던 듯 싶다.
늘 승승장구하며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던 친구에게 '연애의 실패'는 너무 뼈아픈 경험이었나보다. 실패를 몰랐으니 그 인생의 첫 실패나 마찬가지였던 이별을 감당하기가 벅차다던 친구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실패를 모르며 승리만 하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그것을 감당해내는 법, 혹은 실패를 겪은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며 터득한 사람이 진정한 '엄친아'라는 생각이다.
요즘 주식시장을 보면 실패없이 자란 '엄친아' 코스피가 언제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든다.
미국증시만 따라다니던 코스피 지수는 이제는 미국이 없어도 슬금슬금 올라서더니 어느새 또 연고점을 넘어서버렸다.
이제 좀 쉴 때가 됐다는 시그널이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지만, 실패를 모르는 코스피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달려가는 모습이다. 어쩌면 실패가 두려운 나머지,조정에 대응하는 방법을 모르는 나머지 억지로 올라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날 미국증시에서도 쉬어가자는 시그널은 등장했다.
장 초반에는 구제자금 조기 상환과 정부의 부실자산 매입,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증자 성공 등을 바탕으로 금융위기 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강세를 보이더니, 후반 들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FOMC 의사록이 공개되자 일제히 차익매물이 쏟아졌다. FRB가 올해 미국의 성장률과 실업률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수정 전망한 것이 원인을 제공했다.
결국 장 초반에는 기대감으로 상승하다 후반 들어서는 냉혹한 현실에 다시 눈을 뜨며 하락세로 돌아선 셈이다.
기대감과 현실의 괴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언급된 악재이지만, 또 하나 걱정거리가 생겼다. 금융위원회가 공매도 규제를 오는 6월1일부터 금융주를 제외한 전 종목을 대상으로 해제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공매도 규제는 지난해 10월1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공매도가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산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어느정도 금융시장이 안정됐으니 공매도 규제를 해제하겠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물론 공매도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외국인이 시장 전반에 걸쳐 매도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의 변동성을 확산시키는 영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수의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발표된 공매도 허용은 그간 국내증시에서 적극적인 순매수세를 이어온 외국인들의 차익실현 욕구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
특히 최근 일부 대형주를 중심으로 대차거래잔고가 빠르게 증가하는 모습을 볼 때 대차잔고가 크게 늘어난 종목을 중심으로 단기간에 조정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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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건전한 조정은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문제는 국내증시가 조정, 즉 실패를 오랜 기간 겪지 않은 만큼 조정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실패를 모르는 '엄친아'는 실패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더 불안한 마음이다.
김지은 기자 je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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