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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마라톤과 ‘자동차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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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맨 처음 했던 자기 사업이 쌀장사였습니다. 취직해 첫 월급을 받았던 쌀가게에서, 서툰 솜씨로 무거운 쌀가마를 싣고 배달하다가 진창에 넘어집니다. 쌀가마만 떨어진 게 아니라 함께 실은 팥들까지 흩어져버렸습니다.


정 회장은 그걸 다 쓸어담고 일어선 그날 저녁부터 며칠 동안 밤이 늦도록 짐자전거 타는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넘어진 그 자리가 좌절의 시작이 아니라, 다시 딛고 일어설 희망의 발판이란 걸 몸으로 실천해 보였습니다. 마침내 경성거리 제1의 ‘자전거 퀵서비스’가 되었고, 3년 만에 바로 그 가게를 인수하여 주인이 됩니다.

자전거는 달리지 않으면 당연히 넘어지겠지요. 그래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출주도의 한국경제를 두고 학자들은 일찍이 ‘자전거경제’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 우리 경제가 바로 멈추기 직전의 자전거모습을 빼닮았습니다. 특히 짐 실은 자전거는 한번 뒤뚱거리고 비틀거리기 시작하면 여간해선 핸들을 통제하기 어렵게 됩니다. 제조업이 흔들리면서 수출기반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자전거경제’에 작은 기적의 싹이 보이고 있습니다. 메이저 자동차 회사들이 마이너스 매출을 기록한 유럽과 북미시장에서 유독 우리 현대와 기아자동차만 판매량이 늘었다는 희소식. 또한 막강한 조선강국으로서의 위상도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우리나라 경제가 자전거에서 자동차로 갈아탈 조짐이 보입니다. 때맞추어서 강원도 동해안에선 예년의 두 배가 넘는 복어 떼들이 잡히고 있다고 합니다. 강원도 출신 정 회장이 특별히 몰아다주는 복들이 아닐까 나름대로 해몽해 봅니다.

자전거처럼 쉽게 넘어지지 않는 자동차. 가끔 멈춰서 세차도 하고 주유도 하고 정비도 하며 휴식도 취하겠지요. 그렇게 수백 만대의 자동차들이 수억 마력의 넘치는 파워로 한국경제를 견인해 달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수천 개의 관련 부품업체들도 조금 숨통이 트이겠죠. 전자, 기계, 섬유, 화학 등등...부도위기를 넘겨 웃음꽃 피우는 사장들이 늘어나야만 합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섭니다. 도요타자동차가 임금을 포함한 전 부분에 걸쳐 10% 비용절감을 하기로 결정했는가 하면, 엊그제 닛산은 무려 4조원의 영업손실 발생으로 2만명의 감원을 발표했습니다. 현대·기아차의 약진을 보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경쟁사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현대와 기아차의 노조원들이 봄이 되면 트로이의 목마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공룡기업 GM과 포드가 그런 식으로 제 살을 깎아먹다가 미국경제를 저렇게 만들었습니다.


잘 나갈 때 그 이익으로 미리 시설투자도 하고 신차개발도 해야 하는데, 이윤이 생길 때마다 곶감 빼먹듯이 임금으로 가져가려고만 한다면 그야말로 ‘반짝경기’에 그칠 것입니다. 부디 현대의 노조가 이기심을 버리고 단 한번이라도 국민의 편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겠지요. 링거주사를 맞고 있는 파산직전의 초라한 ‘쌍용자동차’신세가 본보기입니다.

42.195km 코스를 서너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고역을 평생 도전하고 사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달리다가 세상을 뜬 젊은이들도 최근 수십 명이 넘습니다. 그 힘든 마라톤을 77세의 석병환씨가 무려 293회나 완주하고 300회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67세에 허리 수술을 하고부터 시작해 살기 위해서 뛰었다는 마라톤.


매주 한번 꼴로 대회에 참가하다시피 하며 달성한 대기록입니다. 300km가 넘는 울트라마라톤도 3회 완주했다고 하죠. 이쯤 되면 ‘노익장’이란 단어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현으로 ‘철익장’이란 표현이 더 적합합니다. 목표가 85세까지 달리는 것이라고 하니, 80세가 안된 젊은이(?)들이 듣기에는 부끄러울 얘깁니다.


마라톤과 자동차- 핍박받고 가난했던 우리 민족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꿈을 선사했던 종목의 원조들입니다. 손기정에서 보스턴마라톤 영웅들을 거쳐 황영조까지, 포니에서 아반떼와 쏘나타를 거쳐 제네시스까지... 세월을 뛰어넘어 세대교체하면서 달리는 이들의 가슴 벅찬 도전사를 또 한번 기대해봐야겠죠.


바야흐로 산천의 초목들조차도 봄맞이 준비운동 중입니다. ‘경제레터’를 읽는 여러분들도 몸을 풀 때가 되었습니다! 실뿌리들이 저 깊은 땅에서부터 길어 올리는 물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까지, 그들은 매년 긴 겨울을 미동도 않고 오직 생명창조 하나만 전념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당연한 듯 써왔던 ‘식물인간’이란 단어가 미안해지는 계절입니다. 해서, 앞으로 식물을 비하하는 용어는 가급적 쓰지 않도록 하는 게 어떨까요.






시사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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