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연기자
글로벌 바이오 신약 시장에서 차기 블록버스터를 가르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치료제가 없던 질환에 신약이 등장해 시장을 새로 여는 방식이 아닌, 이미 표준치료가 자리 잡은 영역에서 더 우월한 치료 효과나 복약 편의성을 앞세워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 '임상 우위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9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는 올해 출시가 예상되는 주요 신약 10개의 2032년 기준 예상 매출을 약 459억달러(약 67조782억원)로 제시했다. 지난해 기준 상위 10개 신약의 예상 매출 규모인 약 290억달러(약 42조3806억원)보다 약 1.5배 증가한 수치다.
단기간에 시장 가치가 커진 배경으로는 약물 기전의 고도화와 제형 진화가 지목된다. 2026년 출시된 신약들의 2032년 전체 매출 중 6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GLP)-1 계열 비만·당뇨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이밸류에이트는 노보 노디스크의 카그리세마와 일라이 릴리의 오포글리프론이 2032년 각각 172억달러(약 25조1260억원)와 118억달러(약 17조2445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두 후보물질은 같은 GLP-1 계열이지만 경쟁력의 방향은 다르다. 카그리세마는 GLP-1과 아밀린 유사체를 결합한 복합 기전을 통해 기존 치료제 대비 체중 감량 효과의 상한선을 끌어올린 약물로 평가된다. 반면 오포글리프론은 경구 제형이라는 제형 혁신을 앞세워 주사제 중심의 GLP-1 시장 자체를 확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기전의 고도화와 제형의 진화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매출 잠재력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수요 확대를 넘어 치료 효과와 환자 편의성에서 얼마나 명확한 임상 우위를 입증하느냐가 처방 시장을 좌우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임상 우위 경쟁은 상위 10개 신약에 포함된 다른 후보물질들에서도 예견된다. 이미 치료제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기존 요법으로 충분히 조절되지 않던 환자군이나 장기 치료 과정에서의 한계를 겨냥하는 모습이다.
존슨앤드존슨이 개발 중인 판상 건선 치료제 이코트로킨라와, 아스트라제나카(AZ)의 유방암 신약 카미제스트란트는 기존 표준치료 대비 효과 개선이나 내약성 차별화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운 후보물질이다. AZ의 고혈압 치료제 박스드로스타트 역시 기존 항고혈압제 시장에서 치료 저항성 환자를 겨냥한 차별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희귀질환 신약에서도 기존 요법의 한계를 개선한 치료제들이 매출 상위권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화이자가 개발하다 로이반트사이언스에 도입된 피부근염 치료제 브레포시티닙과, 베로 테라퓨틱스의 면역글로불린(Ig)A 신병증 치료제 아타시셉트는 과거 환자 수가 적어 시장성이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기존 치료 대비 명확한 임상 개선 효과를 앞세우며 조 단위 매출 후보로 부상한 모습이다.
기존 블록버스터 약물들도 제형 변경과 적응증 확장을 통해 방어 전략에 나서고 있다. 세계 매출 1위 항암제인 머크(MSD)의 키트루다는 특허 만료를 앞두고 피하주사 제형 도입과 적응증 확대를 통해 시장 내 존재감을 유지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