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효원기자
코스닥 상장사 루닛이 25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주가가 부진해 과거 발행했던 전환사채(CB)의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또 주주에게 손을 벌리는 점, 최대주주와 경영진이 15%밖에 참여하지 않는 점을 들어 신뢰가 추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루닛은 2503억원 규모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지난달말 결정했다. 예정 발행가는 3만1650원으로 1주당 신주 0.27주가 발행된다. 현재 주식 총수의 27%가 더 발행된다는 뜻이다.
자금 조달 목적 1순위는 채무상환 자금이다. 올 2분기 1, 2회차 전환사채(CB)의 조기상환 청구가 들어올 경우 985억원을 활용하고, 단기차입금 상환에도 393억원을 사용할 계획이다. 나머지는 연구개발 등 운영자금 용도다.
앞서 루닛은 2024년 5월 루닛 인터내셔널(구 볼파라)을 인수하기 위해 1665억원 규모 제1회차 CB를 발행했다. 같은 달 운영자금 확보 목적으로 50억원 규모 제2회차 CB도 발행했다. 루닛 인터내셔널은 뉴질랜드 소재 유방암 검진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당시 루닛은 이 회사 인수에 2525억원을 투입했다.
1, 2회차 CB의 전환가는 각각 5만2846원, 4만7819원이다. 지난해 5월부터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해졌는데 루닛의 주가가 지지부진하면서 전환 청구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 CB의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 가능일은 오는 5월부터다. 루닛은 풋옵션이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전체 CB의 50% 규모 금액을 유상증자로 조달한다고 설명했다.
루닛 관계자는 "당초 제3자 배정을 통한 전환우선주(CPS) 발행으로 800억원 수준의 자금조달을 고려했는데, 투자자들과 논의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약 2000억원 규모의 풋옵션 리스크가 회사 가치와 주가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이에 재무 리스크를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시장 분위기는 싸늘하다. 루닛은 상장 후 1년 4개월 만인 2023년 11월 2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한 바 있으며, 지난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도 단기적인 주주배정 유상증자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공언이 나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시장에서는 회사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이번 유상증자에서는 최대주주인 백승욱 이사회 의장과 서범석 대표가 배정 주식의 약 15% 수준만 청약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2023년 첫 번째 주주배정 유상증자에서는 100%를 청약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루닛 관계자는 "과거 유증 당시 백 의장과 서 대표는 연이자 15% 수준으로 300억원 규모의 개인 대출을 실행해 현재까지 재무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유증에 추가로 대출을 받기 힘든 상황이지만 회사의 성장과 회복에 대한 책임과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가능한 최대 범위로 유증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