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연기자
글로벌 제약사들이 수조 원을 투입하고도 잇따라 실패한 MASH(대사기능 이상 지방간염) 신약 개발을 두고 전임상 단계의 접근 방식 자체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단순한 간 지방 감소나 간수치 개선을 넘어 전임상 단계에서부터 간암(HCC) 억제 가능성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기간에 질환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기존 전임상 방식으로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주로 활용해온 전임상 설계가 임상 성공을 예측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바이오 업계 등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의 지원을 받은 유럽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 가스트로엔테롤로지 & 헤파톨로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현재 널리 쓰이는 단기 전임상 모델로는 MASH 치료제의 임상 성공 가능성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임상 단계부터 MASH가 간암으로 진행하는 전 과정을 재현하고 약물이 질병의 진행 자체를 억제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MASH 치료제는 향후 연간 40조 원 규모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간 개발 성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셀론설팁을 비롯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유력 후보물질들이 임상 3상에서 잇따라 실패했다. 전임상 동물실험에서는 효과가 확인됐지만 사람에게서는 같은 결과를 재현하지 못한 경우가 반복됐다.
연구진은 실패 원인으로 전임상 단계가 간 지방량이나 간수치 같은 단기 지표 개선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점을 지목했다. 대부분 8주에서 12주 만에 질환을 유도해 수치 변화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인간의 질병 경과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치료제 신약 개발에 성공하기 위한 전임상의 핵심 조건으론 장기 관찰과 간암 데이터 확보를 꼽았다. 실험동물인 쥐의 수명 절반에 해당하는 54주 이상을 관찰하며 질병 진행과 간암 발생 억제 여부를 실제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이 제시한 전임상 기준은 국내 바이오 기업들에는 새로운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년 이상 장기 관찰이 필요해 개발 일정이 늘어나는 데다 비용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간암 발생 여부까지 확인해야 해 실패 위험도 함께 높아지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전임상 설계를 개발 과정에 그대로 적용한 국내 사례는 아직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이 미국 머크(MSD)에 기술이전한 후보물질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전임상 단계에서 54주 이상 장기 관찰을 수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디앤디파마텍이 개발 중인 후보물질 DD01 또한 전임상 단계에서 장기 관찰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회사 측은 대표적인 MASH 동물 모델을 활용해 약 8주간 약물 효능을 평가했으며 주요 개발 타깃은 섬유화 중기 단계인 F2~F3 환자군이라고 설명했다. F2~F3는 간에 염증과 섬유화가 진행됐지만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진행되기 전 단계다. 이에 따라 간암이나 간경변까지 이어지는 장기 자연사 모델은 전임상 설계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국내 기업들도 연구진이 제시한 전임상 기준의 방향성 자체에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실제 개발 과정에서는 임상 진입 속도와 적응증 전략을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MASH 전임상의 핵심은 동물실험에서 확인된 효과가 사람에게 얼마나 잘 옮겨지는지라며 인간 질환과의 연결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MASH 모델에서 재현성을 평가해 왔다는 설명이다. 디앤디파마텍 관계자는 간암 관련 평가는 기술이전 이후 파트너사의 개발 전략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전임상 설계는 후보물질의 효능을 빠르게 확인하고 임상 진입을 앞당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