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일본이 오는 8일 중의원(하원)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달 23일 정기국회 첫날 중의원을 전격 해산하며 총선 단행을 알렸다. 중의원 해산부터 8일 투·개표까지의 기간은 16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초단기' 총선이다. 도도부현 선거관리위원회는 중의원 해산 4일 뒤인 지난달 27일 후보 등록 절차를 마무리했으며 7일까지 사전투표를 진행한다.
중의원 임기나 해산 시기를 놓고 봐도 이번 조기 총선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2024년 10월9일 자로 결성된 중의원은 4년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1년3개월 만에 해산됐다. 정기국회 첫날에 해산을 선포한 것도 이례적이다. 일본에서 정기국회 첫날 해산은 1996년 이후 약 60년 만이며, 2월에 치르는 총선 역시 1990년 이후 36년 만이다.
27일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연설 중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자민당.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직을 걸고 국민에게 신임을 묻겠다"며 이 같은 모험을 단행했다. 이번 총선을 사실상 정권에 대한 신임 투표로 규정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집권 여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는 것이 관례다. 이를 고려하면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10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원 투표로 승리했을 뿐 국민의 선택을 거치진 않았다. 이번 총선을 통해 이를 재확인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배짱'은 높은 지지율 덕분에 가능하다. 다카이치 내각은 지난해 10월 발족 이래 줄곧 70%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의석수를 크게 늘려 기존의 여소야대 정국에 반전을 꾀할 수도 있다. 지지율을 등에 업고 무리하게라도 총선을 치르고, 장기집권을 위한 토대를 닦겠다는 구상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오른쪽)가 지난달 28일 폭설 피해를 입은 홋카이도 삿포로시를 찾아 나카무라 히로유키 후보 지원 유세를 펼치고 있다. 자민당.
그러나 여론은 이를 무리수로 인식한 듯하다. 연일 고공 행진하던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조기 총선을 발표함과 동시에 급락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달 24~25일 실시한 전국 여론 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이 직전 조사(67%) 대비 10%포인트 하락한 57%를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 발표된 다른 주요 언론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 하락세가 일제히 관측됐다.
심지어 폭설과 추위가 유세 활동의 새 변수로 떠오르면서 야당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중도개혁연합 공동대표는 "노인이나 장애인도 이 눈길에 투표소에 가라는 것이냐"라며 "다카이치 총리가 민주주의 정신을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를 의식한 듯 다카이치 총리도 폭설이나 혹한 피해가 있는 지역을 먼저 유세 지역으로 삼고 있다. 후보 등록 마감일이자 선거운동 시작일인 지난달 27일에는 동일본대지진의 재해지이자 혹한 피해가 심한 후쿠시마, 미야기현을 돌았다. 다음날에는 기록적인 폭설을 기록한 홋카이도에서 유세를 펼쳤다. 마이니치신문은 수상 관저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총리가 '눈 속 선거'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찾아가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번 총선은 총 465석(지역구 289석·비례대표 176석)을 놓고 치러진다. 과반 확보 기준은 233석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연립정당인 일본유신회와 반수 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그는 지난달 26일 일본 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중의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즉시 퇴진하겠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배수진이 실제로 얼마나 표심을 자극할 수 있을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과 집권 여당 자민당 지지율 사이 괴리가 컸기에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자민당은 그간 비자금 스캔들, 통일교 연계 논란 등으로 지지율이 줄곧 하락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자민당 지지율이 반등한 것이 확인됐다.
연합뉴스
일본 TBS 산하 뉴스 채널 JNN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민당 지지율이 직전 조사 대비 5.0%포인트 오른 34.7%로, 정당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고 2일 보도했다. 같은 기간 교도통신이 시행한 여론조사에서도 비례대표 투표 정당으로 자민당을 선택한 비율은 36.1%로 6.9%포인트 상승했다. 야당인 중도개혁연합은 2.0%포인트 오른 13.9%에 그쳤다.
이에 다카이치 총리의 승부수가 장기집권 체제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이 연립 여당 일본유신회와 함께 이른바 '절대 안정 다수' 의석인 261석도 노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절대 안정 의석을 확보하면 중의원 내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는 여당이 독점하게 된다. 여기에 모든 위원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해 법안 처리에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
나아가 자민당과 유신회가 전체 의석의 3분의 2인 310석을 넘게 되면 여소야대인 참의원에서 법안이 부결되더라도 중의원에서 재의결해 가결할 수 있다. 여기에 개헌안 발의도 가능해진다. 자민당의 극우 지지자들은 아베 신조 전 총리 때부터 일본을 '전쟁가능 국가'로 만들기 위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