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여드름 치료제만 급증…'처방전 자판기' 막으려면[비대면진료의 미래④]

30초면 끝나는 진료…'비대면의 민낯'
'비급여 약물' 등 의약품 오남용 우려도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러다임을 뒤흔들 거대한 변화 앞에서 비대면진료가 바꿀 대한민국 의료 현장의 실태를 살펴보고, 진정한 혁신으로 나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집중 분석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이 병원을 별점과 리뷰 수, 가격순으로 노출하면서 의료 서비스가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의사들이 플랫폼 내 평판 관리를 위해 환자의 무리한 처방 요구를 거절하지 않는 데다 일부 질환의 경우 비급여 처방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기자가 직접 비대면진료 앱을 통해 여드름치료제를 처방받았다. 앱 접속 후 '후기 많은 순'으로 의사를 정렬하자 3만개가 넘는 압도적인 리뷰 수를 보유한 의사가 상단에 노출됐다. 이 의사에게 진료를 접수하자 잠시 후 전화가 걸려 왔다. 진료의뢰서 작성 시 별도의 질환 사진을 올리지 않았는데도 의사는 "화농성 여드름이냐"는 한 가지 질문만 했을 뿐 여드름 부위를 눈으로 확인하려 하진 않았다. 곧이어 여드름 치료제인 '미노씬' 2주 분량이 처방됐다. 당초 앱에 고시된 진료비는 4900원이었지만, 비급여 처방이 이뤄지며 최종 진료비는 1만5000원이 청구됐다.

한 비대면진료 앱에서 여드름 치료제를 처방받기 위해 '후기 많은 순'으로 검색하자 가장 상단에 노출된 의사 프로필. 3만개에 가까운 리뷰를 보유하고 있다.

약국 이용 단계에서도 검증은 없었다. 처방전을 인근 약국으로 전송한 뒤 방문하자, 약사는 본인 확인 절차 없이 곧바로 약을 내주었다.

같은 날, 허리디스크 통증에 대한 진통제를 처방받기 위해 비대면진료를 받은 다른 정형외과에도 환자가 실제 질환을 앓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처방 목록에 없던 소화제를 요청하자 의사는 별다른 확인이나 안내 없이 소화제를 추가했다.

문제는 이러한 허술한 진료가 심각한 약물 오남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로부터 제출받은 '월별 DUR(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 점검완료 처방전 수' 자료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비급여 의약품의 비대면 처방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 점검량을 보면 2023년 8월 여드름치료제 '이소티논'의 비대면 점검량은 41건으로 전체 점검량(13만6601건)의 약 0.03%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1월에는 4556건으로 급증하며 전체 12만535건 중 3.78%까지 늘어났다. 비대면진료로만 처방이 126배 급증한 것이다. 약학정보원에 따르면 이소티논은 다른 치료법으로 잘 치료되지 않는 중증의 여드름 치료에 사용하는 약물이다.

탈모치료제 '피나스테리드'의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2023년 8월 비대면 점검량은 단 6건(0.007%)에 그쳤으나, 지난해 11월에는 7664건으로 치솟으며 전체(11만7394건)의 6.53%에 달했다.

DUR은 기존에 복용 중인 약과 새로 처방받는 약이 중복되지 않는지 전산망을 통해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다만 점검이 의무가 아니기에 정확한 비급여 약물 처방량을 확인할 순 없다. 유통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비급여 약물들이 비대면진료라는 통로를 통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현재 비대면진료 수가가 대면 진료 대비 130%로 책정돼 있고, 약국의 조제료와 복약지도료에도 30%의 가산이 붙는다"며 "비대면진료가 편의성만 강조된 채 확산하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불필요한 의료 공급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이 병원을 '별점'과 '가격' 등으로 정렬하는 시스템을 두고도 우려가 나온다. 의료 서비스의 질을 환자의 주관적인 경험으로 평가하는 방식은 의사가 소신 있는 진료 대신 환자의 입맛에 맞는 처방을 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특정 병원을 광고하거나 가격을 내세워 환자를 유인하는 행위는 의료법상 '유인·알선 금지' 규정을 위반할 소지도 있다.

더욱이 현장 의사들조차 비대면진료에 특화된 체계적인 교육이나 가이드라인 없이 진료에 투입되고 있다. 목소리 변조나 명의 도용을 통한 부정 처방 가능성 등 대면진료보다 높은 위험성을 차단할 장치도 현재로선 전무하다.

신재용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재 비대면진료 제도는 구체적인 방향성과 목표가 불분명해 세부적인 안전 계획이 부재한 상황"이라며 "플랫폼에 대한 규제, 환자 본인 확인 절차 강화 등 구체적인 제도 보완 없이 본 사업이 시행될 경우 진료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거나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부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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