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영기자
'관세(Tariff)·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강한 정부(Strong Executiv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 1주년을 맞는다. 1기보다 더 과감한 추진력으로 무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보다 4배에 가까운, 220여건의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강도 높은 이민 단속과 관세장벽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구현하는 데 앞장섰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거나,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는 '도널드 트럼프 2기' 1년의 심판대가 될 전망이다. 그의 의지와 달리 지지율은 높게 봐야 4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의 실질 지지율은 60%"라고 반박하며 다가올 1년에도 더욱 강하게 그립을 쥐겠다고 나섰다. 특히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이민정책 등에 더욱 힘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표심에는 오히려 부정적일 것으로 관측했다.
20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연초 지지율은 30% 후반대에서 40% 초반대 사이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12월1일 기준 갤럽 조사에서 36%로 집계돼 최하 수준까지 떨어졌다. 연초 마두로 정권 축출 작전이 성공을 거두면서 소폭 반등했다. 최근 AP통신이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와 진행한 국정운영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40%가 '긍정적'이라 평가했다.
'중간 평가'로 불리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서둘러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미 연방하원은 2년 주기로 선거하는데, 현재 지지율을 보면 공화당이 지금처럼 의회를 독점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현 하원의원 임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낸시 펠로시 전 미국 연방 하원의장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지난해 말 ABC방송 인터뷰에서 전망했다. 펠로시 전 의장은 "현재 공화당은 의회를 무력화했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일갈했다.
미국 민주당이 지방 선거와 주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이런 반발심은 이미 표심으로 드러났다.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 시장이 된 조란 맘다니와 '대통령들의 고향'인 버지니아의 주지사가 된 애비게일 스팬버거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맘다니 시장은 뉴욕시장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반(反) 맘다니' 단일화를 공공연히 촉구했던 인물로, 그의 승리는 트럼프 진영에 상징적 타격을 입혔다고 볼 수 있다.
사법 리스크가 큰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자신이 다시 탄핵에 직면할 것이라며 공화당 의원들의 결집을 촉구하고 있다. 연초부터 공화당 하원의원들을 만나 "중간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날 탄핵할 이유를 찾아낼 것이고, 결국 난 탄핵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를 동원해 정적을 겨냥한 표적 수사를 벌였는데, 그 반대가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중간선거는 트럼프 대선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었던 마가 세력의 대중적 영향력을 확인할 기회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고 미국 CNN은 짚었다. 지난 주말 공개된 NBC 뉴스·서베이몽키 여론조사에서는 강한 지지 세력 비율이 지난해 4월 26%에서 현재 21%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가 공화당원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도 78%에서 70%로 감소했다.
선거 판세를 가를 미국 경제 상황과 관련해서는 부정적 여론이 강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트럼프 대통령 재임하의 미국 경제 상태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다"거나 "나쁘다"고 평가했다. 49%는 경제 상황이 1년 전보다 악화했다고 답했고, 35%는 개선됐다고, 15%는 큰 변화가 없다고 응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운영에 대해 45% 미만이 지지 의사를 밝혔으며, 약 55%는 현재 경제가 가계에 재정적 부담을 주고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공화당의 약점이 경제라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WSJ는 최근 보도했다. 그는 지난 13일 미시간주에 있는 포드 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우리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정확히 반대되는 상황을 빠르게 이뤄냈다"며 "인플레이션은 거의 없고 성장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올해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관세 정책도 언급하며 "나는 관세를 밀어붙인 사람"이라며 "이제 모두가 내가 관세에 대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연방대법원 (심리) 사건에서도 이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여 적격성 여부를 심리 중으로, 이르면 1월 중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관세 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와 더불어 2기 행정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무역관행을 시정하겠다면서 기존 무역협정 재검토를 예고했다. 전통적인 우방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고율 관세를 가장 먼저 예고하면서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조로 세계 무역 질서 재정립에 나섰다. 유럽은 물론 한국·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2일을 '해방의 날'이라 명명했고, 이후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15%로 인상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작년 두 번째로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 1주년을 맞는다. UPI연합뉴스
지난 1년간 밀어붙인 이민 단속 정책은 자국민의 불만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으며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정책 포문을 열었고, 2기에서는 '미국에 해를 끼친다'는 명목하에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중심으로 불법 이민 단속을 강화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법이나 인권 침해 소지가 큰 일들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연초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30대 백인 여성 총격 사망 사건으로 전국 시위까지 촉발됐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할 일을 한 것"이라며 ICE 지지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판 여론에도 관련 정책을 강화하고 나섰다. 지난해 7월 미 의회를 통과한 2026회계연도 예산안에 따르면 ICE와 국경순찰대는 2029년까지 1700억달러(약 251조원)의 추가 자금을 지원받게 된다. 기존 연간 예산은 약 190억달러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1년간 악화일로한 유럽 등 전통적 동맹국과의 관계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령 그린란드 편입설을 재차 주장하고 있다. 그가 반발하는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유럽국들도 집단 반발하면서 대서양(미국·유럽 간) 무역전쟁 확전 우려까지 불거졌다. 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조차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동맹국들에 이런 대응을 하는 것은 미국과 미국의 재계, 미국 동맹에 나쁜 일"이라며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의 외교 싱크탱크인 유럽외교협회(ECFR)도 최근 공개한 보고서를 토대로 "이번 조사는 한때 유럽의 가장 든든한 동맹국이었던 미국의 행동이 의도치 않게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China Great Again)' 만들고 다극적 국제질서의 도래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약화했다고 짚었다.
인도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무쿨 케사반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트럼프 2기는 일탈이나 우연이 아닌 상대적 쇠퇴 국면에 들어선 미국 패권의 정체가 드러난 시기"라면서 관세와 군사 행동은 '패권 회복'이 아닌 '쇠퇴의 징후'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은 국제법·자유주의 질서를 무력화했다"며 "미국의 도덕적·규범적 리더십 주장 역시 설득력을 잃었다"고 총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