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교원그룹, 해킹사고 더 무겁게 봐야

"주변 지인들이 빨간펜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너무 난처하네요."

교원그룹 해킹사고 소식을 접한 한 빨간펜 가입 학부모의 말이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둔 그 역시 주변의 추천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당 학습지를 선택했다. 그는 "'나만 하면 될 걸, 괜히 다른 가정 아이들까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에 노출되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이 무엇보다 크다"고 토로했다.

세상은 디지털 전환(DX)을 넘어 인공지능 전환(AX)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학습지 시장은 다르게 돌아간다. 종이 학습지가 온라인화되고 AI 기반 학습 서비스까지 등장했으나 상당수 업체의 영업은 여전히 전통적인 대면 방식으로 이뤄진다.

교원 빨간펜과 구몬 역시 담당 교사를 직접 만나야만 상품 가입이 가능한 구조다. 아파트 단지 안팎에서 여전히 심심찮게 목격되는 판촉 부스가 이런 원리를 상징한다.

학부모와 아이, 교사 간의 스킨십과 라포(Rapport) 형성은 삼자 간 신뢰의 바탕이다. 학습지 시장은 이런 신뢰를 양분 삼아 성장해왔다. 40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연 매출이 1조원 넘는 대형 기업으로 성장한 교원의 뿌리에도 부모가 아이의 정보를 믿고 맡기면서 형성된 신뢰와 교육기업이라는 정체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만큼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보안과 책임의 기준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교원의 대응이 이런 역사성과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위험에 노출된 고객이나 문제가 된 서버의 규모를 가능한 한 축소하려는 듯한 모습은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 '2차 사고 및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후속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는 설명은 두루뭉술하게 들린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가 이뤄지고 있으며 소비자가 어떤 지점에서 체감할 수 있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다.

원론적인 문구를 앞세워 일단 불안을 달래보려는 시도가 커다란 역풍을 불러일으킨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의 쿠팡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계산상 똑 떨어지는 만큼의 대가만 치르겠다는 접근은 위험하다.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발전해온 기업으로서, 숫자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신뢰의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으로서 지금의 대응이 적절한지를 냉정하게 돌아보기 바란다.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3일 서울 관철동 교원 챌린지홀에서 열린 교원그룹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교원그룹

바이오중기벤처부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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