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수기자
퇴직연금 성과는 단순히 불입 규모보다 언제 시작하느냐와 제한된 자산 비중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갈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행 제도에서 사실상 고정된 '안전자산 30% 구간'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장기 수익률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 퇴직연금 제도에서는 주식형 펀드를 포함한 위험자산 투자 한도가 70%로 제한돼 있다.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노후자산의 안정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해당 규정은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가입자는 적립금의 70%를 주식형 상품으로 채우고, 나머지 30%는 채권이나 예금과 같은 안전자산에 배분하는 경향을 보인다.
퇴직연금 전문가들은 은퇴까지 긴 시간이 남은 투자자일수록 '안전자산 30%'를 단순한 방어 구간으로 두기보다,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전략적 활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혜나 키움투자자산운용 연금마케팅팀장은 "20·30세대는 연금을 단순한 절세 수단이 아닌 적극적인 장기 투자 포트폴리오로 활용해야 한다"며 "젊은 층의 연금 투자 성패는 주식 비중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에 달린 만큼, 고빈티지 적격 타깃데이트펀드(TDF)를 통해 제한된 안전자산 30%를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연금 투자에서 20~30대의 가장 큰 무기는 시간이다. 은퇴까지 수십 년이 남은 젊은 투자자는 상승 국면에 오래 노출될 수 있고, 중간에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여러 차례의 시장 조정을 거치며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투자 성향이 공격적이든 보수적이든, 장기적으로는 주식에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래 노출되느냐가 성과를 좌우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최근 퇴직연금 시에서는 채권혼합형 상품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국내 상장 채권혼합형 ETF 순자산은 2022년 말 대비 약 7배 증가했다. 위험자산 70% 한도를 넘지 않으면서 주식 비중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수요가 몰린 결과다.
채권혼합형 ETF의 한계도 분명하다. 해당 상품의 주식 비중은 대체로 20% 수준이며, 규정상 최대치도 50% 미만이다. 안전자산 30%를 모두 채권혼합형 ETF로 채워도 전체 포트폴리오 기준으로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주식 비중은 최대 15% 수준에 그친다. 즉 위험자산 70%를 전부 주식형으로 채우더라도, 전체 주식 비중은 85%를 넘기기 어렵다.
최근 연금 시장에서 TDF가 주목받는 이유다. 일반 채권형 상품과 달리 TDF는 주식 비중을 최대 80%까지 가져갈 수 있다. 은퇴 시점이 많이 남은 '고빈티지' 적격 TDF로 안전자산 30%를 구성할 경우 이 구간에서만 약 24%의 주식 비중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TDF는 특정 은퇴 시점을 목표로 자산 비중을 자동 조절하는 상품으로, 금융당국이 인정한 '적격 TDF'는 퇴직연금 계좌에서 비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 TDF를 잘 활용하면 전체 포트폴리오 기준으로 주식 비중을 최대 94% 수준까지 유지하는 구조도 가능해진다.
성과 측면에서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출시된 적격 TDF 중 가장 고빈티지 상품인 키움투자자산운용의 '키워드림 TDF 2065'는 은퇴까지 40년 이상 남은 20·30세대를 겨냥해 높은 주식 비중을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해당 상품은 출시 이후 3개월간 1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같은 기간 채권혼합형 ETF 평균 수익률은 6%대에 그쳤다. 장기 투자에서 복리 효과까지 고려하면 은퇴 시점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주식 비중을 최대로 높였을 때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다만 고빈티지 TDF처럼 분산과 자산배분이 체계적으로 설계된 상품의 경우 이러한 위험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가·지역별 글로벌 분산 투자, 가치·성장·퀄리티 등 스타일 배분, 기술·바이오·AI 등 테마와 섹터 단위의 초분산 전략이 결합돼 있고, 시장 상황과 생애주기를 고려해 전문가가 자동으로 비중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결국 퇴직연금의 핵심은 제도의 한계 안에서 얼마나 일찍 시작하고, 안전자산 구간을 얼마나 영리하게 운용하느냐다. 같은 70대 30의 구조라도, 선택에 따라 은퇴 후 자산의 모습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