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준기자
2020년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격 은폐 의혹'으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주요 인사들에 대한 항소 여부를 고심 중이다. 이 사건의 항소 기한은 2일이다.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통상 피고인 모두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는 일은 드물다. 수사 결과와 정반대로 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상급심에서 범죄 유무를 다퉈봐야 한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박철우 서울중앙지검장이 항소 의견을 담은 수사팀의 보고서를 돌려보내면서, 항소장 제출 마감 시한인 이날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지검장은 '판결문의 무죄 이유 등에 대한 분석 보완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아직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누가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검찰은 중요 사건의 경우 수사팀의 항소 또는 상고 의견이 담긴 의견서를 대검찰청에 보고하기 때문에,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구 대행과 박 지검장의 결정만 남은 셈이다. 만약 두 사람이 항소 포기로 결론을 내릴 경우, 검찰은 또다시 격랑에 휘말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1심은 지난달 26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 전부에 대해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서 전 실장 등이 피격과 소각 사실을 은폐하거나 월북으로 몰아가려고 한 혐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법원에서도 판단이 엇갈린 사안이라 항소를 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법원은 지난 2022년 12월 10시간에 걸친 영장심사를 진행한 뒤, 서 전 실장에 대해 "범죄의 중대성과 지위, 관련자들과의 관계에 비춰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관련 부처에 첩보 삭제나 월북 몰이를 지시했다는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는 의미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증거 인멸, 도망의 우려가 있어도 범죄 소명이 되지 않으면, 구속 영장이 발부되지 않는다"며 "검사와 판사의 판단이 다르다는 게 아니고 판사들의 판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다퉈봐야 하는 사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