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에 멈춘 소비…유통기업, 내년도 '긴축 모드'

환율·내수 이중 부담에 경영 전략은 관리 중심
업종별 온도 차 속 공통 키워드는 효율

유통·소비재 기업 경영진은 내년 경영 환경에서 가장 큰 변수로 환율과 함께 내수부진을 지목했다. 올해 원화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해외에서 들여오는 식품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이는 결국 물가를 자극해 국내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경제가 30개 유통·소비재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3.3%는 '환율 변동성'을 내년 최대 경영 리스크로 꼽았다. 이는 내수 소비 위축(66.7%)과 인건비·원자재 등 비용 부담(60.0%)을 웃도는 수치다. 환율 리스크는 업종과 사업 구조를 가리지 않고 공통으로 언급됐다.

정부의 고강도 대응에 원 달러 환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26일 서울 중구 명동 환전소 거리 전광판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2025.12.26 윤동주 기자

고환율 장기화 우려, 보수적 시각 확산

기업들은 환율 변동성이 단순한 외환 비용을 넘어 원가 구조와 가격 정책, 투자 판단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입 원가 비중이 높은 식품·소비재 기업뿐 아니라 해외 사업 비중이 크지 않은 내수 중심 유통 기업들까지 환율을 주요 리스크로 지목한 점이 이를 보여준다.

실제 올해 원·달러 환율은 큰 폭의 변동성을 보였다. 주간 종가 기준 달러 대비 연평균 원화 환율은 1422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1394.97원)을 웃돌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종가 기준 최고점은 4월 9일 1484.1원, 최저점은 6월 30일 1350.0원이었다. 분기별로는 1분기 평균 환율이 1452.66원으로 가장 높았고, 2분기 1404.04원, 3분기 1385.25원으로 낮아졌다가 4분기에 다시 1450.98원으로 반등했다. 올해 마지막 거래일인 30일 원·달러 환율은 1439원에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한·미 금리 격차의 장기화와 개인·기업의 해외 투자 확대에 따른 달러 수요 증가를 원화 약세의 주요 배경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환율 변동성이 상당 수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주요 금융기관들은 내년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안팎에서 등락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내수 소비 위축 우려…"허리띠 더 조인다"

응답 기업의 66.7%는 내년 경영 환경의 핵심 불확실성 요인으로 내수 소비 위축을 꼽았다. 경기의 방향성 자체보다 소비 회복 속도와 지속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 크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가격 정책과 투자 전략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설문에서 전반적인 가격 인상을 기본 방향으로 제시한 기업은 3.3%에 불과했다. 반면 '원가와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응답이 56.7%로 가장 많았고, 가격 동결(20.0%)과 일부 품목·서비스 선별 인상(20.0%)이 뒤를 이었다.

경영 기조 역시 관리 중심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의 70.0%는 내년 경영 기조로 '선택적 투자와 비용 관리 병행'을 선택했다. 성장 중심의 투자 확대를 택한 기업은 13.3%에 그쳤고, 비용 관리 중심의 방어적 경영이나 긴축 경영을 선택한 기업은 16.7%였다.

긴축 또는 효율화 경영을 검토 중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주요 내용을 묻자, 재고 및 운영 효율 관리 강화(56.7%)와 비용 절감·조직 효율화(53.3%)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인력 구조조정이나 대규모 사업 재편과 같은 강도 높은 조치는 제한적인 것으로 조사됐지만, 운영 전반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영 전략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종별 대응 전략, 온도 차

업종별로는 내년 경영 환경을 바라보는 인식과 대응 전략에서 온도 차가 나타났다. 내수와 환율 부담은 공통 변수였지만, 업종별로 우선순위와 대응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 기업들은 내수 소비 위축과 환율 변동성을 동시에 부담 요인으로 지목했다. 소비 회복 지연과 고정비 부담이 겹치면서 신규 투자보다는 기존 점포와 사업의 효율을 높이는 전략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었다. e커머스와 편의점 업종은 경쟁 심화와 비용 부담을 핵심 변수로 꼽았다. 성장세는 이어가고 있지만 인건비와 물류비 상승, 프로모션 경쟁에 따른 마진 압박이 커지면서 운영 효율과 재고 관리 강화를 통해 수익성을 방어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연합뉴스

식품 기업들은 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을 가장 직접적인 리스크로 인식했다. 수입 원재료 비중이 높은 구조상 환율 변동이 곧바로 원가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가격 정책에서는 소비 위축을 고려해 전반적인 인상에는 신중한 태도가 두드러졌다.

패션·화장품 업종은 내수 둔화와 함께 해외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주요 리스크로 꼽았다. 환율 변동성과 현지 경쟁 심화·비관세 장벽 등이 부담 요인으로 거론됐지만, 다른 업종에 비해 성장 중심 투자를 선택한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브랜드 경쟁력과 해외 수요를 토대로 성장 기회를 계속 모색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내년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본 기업은 56.6%(17곳)로 절반을 넘었다. 이 가운데 '5% 이상 증가' 응답은 23.3%(7곳), '1~4% 증가' 응답은 33.3%(10곳)로 나타났다. 매출이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은 30.0%(9곳), 감소를 예상한 응답은 13.3%(4곳)에 그쳤다.영업이익 전망도 유사했다.

응답 기업의 63.4%(19곳)는 내년 영업이익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1~4% 개선' 응답이 46.7%(14곳), '5% 이상 개선' 응답이 16.7%(5곳)였다. 영업이익이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은 23.3%(7곳), 악화를 예상한 응답은 13.3%(4곳)로 집계됐다.경기와 소비 회복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지만, 비용 관리와 운영 효율화를 통해 실적 방어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특히 매출과 영업이익 전망에서 '큰 폭의 악화'를 예상한 응답이 없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경영 환경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데도 실적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으로 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유통경제부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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