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화와 타협의 청와대 시대 열길

용산 대통령실의 청와대 이전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관저 보수 작업이 끝나는 1월 초께 이사를 한다고 한다. 2022년 5월 용산으로 옮겼던 대통령실이 3년7개월 만에 다시 청와대로 복귀하는 것이다. 청와대 시대로의 회귀를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곱씹게 된다.

우선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통령실이 어디에 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여러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추진하다 경호와 비용 등 문제로 중단했다.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전 대통령은 광화문 정부중앙청사를 집무실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다 그만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를 옮기겠다는 공약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광화문 이전을 약속했다가 용산을 선택했다. 이들 대통령의 명분은 국민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다. '불통' '구중궁궐' '문고리' 등은 청와대 담벼락에 갇힌 대통령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대표적 단어였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는 방식을 제왕적으로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결단하지 않으면 그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본다." 윤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의 용산 시대를 너무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 시대를 끝내려고 했지만 여러 이유로 실패한 만큼 자신은 강력한 결단력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그렇게 74년 만에 청와대 시대를 마감하고 용산 시대를 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약속과는 달리 스스로 제왕이 되려 했다. 많은 국민에게 분노와 부끄러움을 안긴 비상계엄 조치는 그를 최악의 불통 대통령으로 박제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에 있건, 광화문에 있건, 세종시에 있건 대통령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행동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어떤 대통령도 '청와대가 국민으로부터 멀어서 소통이 안 된다' '이곳은 터가 좋지 않다' 등 핑계를 대기 어려워졌다. 이를 이 대통령이 확실히 증명해줬으면 한다. 어느 대통령보다 많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협치의 길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보여준 모습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국무회의든, 부처 업무보고든, 타운홀미팅이든 웬만하면 TV로 생중계한다. 특히 국무회의에서 이뤄지는 대통령과 장관들의 토론을 여과 없이 공개함으로써 '투명한 정부' '일하는 정부'의 모습을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의 인사권을 특정 인물이 쥐고 흔든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문고리 3인방'처럼 일부 참모들 속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사법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과도하게 사법부의 힘을 대통령이나 입법부가 뺏으려고 해서도 곤란하다. 이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차원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흔드는 과오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공직 기강 잡기라는 이름으로 공무원 줄 세우기를 하는 것도 위험하다. 입법부의 권한이 세지면서 행정부 관료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여기에다 '지난 정권에서 한 일을 모두 캐겠다'는 식으로 압박한다면 공직자의 남은 자부심마저 꺾게 된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과도 더 자주 만나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청와대 복귀가 '장소는 중요치 않다'는 이 대통령의 합리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 믿는다. 그 판단을 바탕으로 지금보다 더 투명하고 포용력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한다.

조영주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yjcho@asiae.co.kr<ⓒ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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