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생성' 비밀, 중수소 생성 메커니즘 규명

중수소의 생성 메커니즘이 규명됐다. 중수소는 결합 에너지가 매우 약해 초고온·고에너지 충돌 환경에서 생성·유지되는 과정이 장기간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국제 공동연구팀이 파이온-중수소 상관관계를 정밀 분석, 중수소가 충돌 직후 직접 형성되는 게 아니라 공명 상태의 붕괴 이후 파이온이 여분의 에너지를 흡수해 핵자 결합을 돕는 '파이온 매개 핵융합'으로 생성되는 것을 입증했다.

한국연구재단은 인하대 권민정 교수가 한국 대표로 활동하는 ALICE 국제 공동연구팀이 유럽 핵입자 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로 진행한 양성자 간 충돌 실험에서 중수소 생성 메커니즘을 실험적으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23일 밝혔다.

공명입자 붕괴 후 중수소가 생성되는 과정. 이 그림은 고에너지 양성자 충돌에서 어떻게 중수소가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CERN ALICE 인하대 권민정 교수 제공

ALICE는 CERN의 LHC를 이용한 국제 공동프로젝트 중 하나다. ALICE의 실험은 빅뱅 직후 100만분의 1초 후에 형성됐을 '원시 우주'를 재현·관찰함으로써 우주 초기 물질의 생성과정과 상호작용을 밝혀 우주의 진화과정 및 강한 상호작용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된다. 이 실험에는 한국 8개 기관에 52명의 연구자를 포함해 세계 40개국·170개 기관의 연구자 1900여명이 참여한다.

CERN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핵입자 가속기로 납 등 중이온 또는 양성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충돌시켜 초미시 세계를 연구하는 데 쓰인다. 중수소는 수소의 동위 원소 중 하나로 수소보다 무거운 원자로 분류된다.

중수소는 결합에너지가 수 MeV(Mega-electron Volt, 전자 하나가 1V(볼트)의 전압을 거슬러 올라갈 때 얻거나 잃는 에너지) 수준으로 매우 약하다. 그런데도 수백 MeV 이상의 에너지가 집중되는 초고온 강입자 충돌 환경에서 다량 생성되는 이상 현상이 관측된다. 쉽게 깨져야 할 약한 결합의 원자핵이 극한의 조건에서도 생성된다는 점은 핵물리학의 중요 미해결 문제로 남는다.

국제 공동연구팀은 CERN의 LHC에서 수행한 양성자?양성자 충돌 실험에서 생성된 파이온과 중수소 쌍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분석, 입자가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권민정 교수. 한국연구재단 제공

특히 델타 공명입자(델타 중입자와 관련된 짧은 수명의 입자로 고에너지 실험에서 관측되는 들뜬 상태의 입자)가 붕괴하며 생성된 양성자와 중성자가 다시 결합할 경우 그 흔적이 데이터에 남는 점에 주목했다.

이 결과 관측된 중수소와 반중수소의 60%가량은 델타 공명입자가 붕괴된 이후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모든 공명입자 붕괴의 기여를 포함하면 그 비율은 9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수소가 충돌 과정에서 곧바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공명입자가 붕괴된 후 생성된 입자가 다시 결합해 형성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가벼운 원자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최초의 직접적인 실험 증거를 제시, 고에너지 핵물리학의 핵심 난제를 해결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 핵 생성 과정을 보다 정확히 기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우주물리와 천체물리 모델의 정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권 교수는 "이번 연구는 중수소 형성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삼중수소와 헬륨 등 복잡한 원자핵에 대해선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며 "보다 큰 규모의 충돌 환경에서 공명입자 붕괴가 핵이 형성되는 데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비교·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CERN 협력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 성과(논문)는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를 통해서도 소개됐다.

세종중부취재본부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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