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환기자
"현대 사회 새로운 사회계약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것."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는 서울시의 사회복지정책인 '디딤돌소득'을 "복지나 사회보험의 확장을 넘어선 사회계약"이라고 평가했다. 새로운 자산 배분과 사회적 이동성을 회복시킬 요인으로, 국가의 복지 시스템을 상당 부분 보완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2024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가 23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25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에 참석해 박수 치고 있다. 강진형 기자
로빈슨 교수는 23일 오전 DDP 아트홀에서 개최된 '2025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에 참석, '포용적 제도,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한 사회적 기반'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섰다.
디딤돌소득은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재산 3억2600만원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기준 중위소득 대비 부족한 가계소득 일정분을 채워주는 서울시의 소득 보장실험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이 지원받는 하후상박(下厚上薄)형으로, 시는 2022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2076가구에 지급했고 2026년까지 성과평가 연구를 이어간다.
이 일환으로 계획한 포럼에서는 디딤돌소득 관련 연구와 함께 복지제도의 새로운 방향이 논의됐다. 로빈슨 교수는 '경제 성장과 사회적 분배, 복지에서의 정부 역할'에 대해 강연하며 "디딤돌소득은 한국 국민들이 사회적 계약을 결정할 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 복지제도와 달리 더욱 유연하고 포용적인 틀을 갖추고 있어 현대 사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디딤돌소득의 핵심은 소득 기준을 초과해도 수급 자격이 유지돼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는 설계에 있다. 3년여간 소득 실험 결과, 기준 중위소득이 85% 이상을 넘어 더는 디딤돌소득을 받지 않아도 되는 탈(脫)수급 비율이 8.6%로 나타났으며 근로소득이 늘어난 가구도 31.1%로 집계됐다. 올해만 봐도 수급가구 탈수급율은 1.1% 포인트, 근로소득 증가 가구는 2.8% 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로빈스 교수는 한국의 공공 사회복지 지출이 라틴 아메리카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공공 부문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기반으로 국민의 자산이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디딤돌소득은 단순한 현금 지원을 넘어 기회 회복과 자산 형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디딤돌소득의 역할을 기대했다.
디딤돌소득 시범사업의 종합 성과를 평가하는 시간도 가졌다. 첫 세션에서 이정민 서울대학교 교수는 디딤돌소득 수급가구의 총소득이 증가해 월평균 가구소득이 비수급가구보다 25만원 높았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이를 통해 교통비와 식료품비 같은 필수재 지출이 늘었고 이는 정신건강 및 영양지수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급에 따른 소득효과로 인해 지원 기간 전체에서 가구주의 평균 노동 공급(근로 여부)은 10.4% 포인트 줄었다. 하지만 이는 교육, 훈련, 돌봄, 건강관리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활용한 결과라는 점을 방증한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비교가구보다 지원가구에서 교육훈련비와 의료비를 더 많이 지출한 점을 제시하고 장기적으로는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인적자원 투자도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진 세션에서는 에이미 캐스트로 펜실베니아대학교 부교수가 "돌봄 노동은 물질적 비용과 사회적 고립을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는 데 소득보장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출소자와 부모·아동 등 대상 실험 결과, 소득 보장이 정신·신체적 건강, 주거 및 재정 안정성을 개선하고 자녀 교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부연했다.
패널 토론에서는 박명호 홍익대학교 교수가 디딤돌소득 전국 시행에 따른 중장기 재정 소요를 추계하고 지출 구조 조정과 세수 확충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디딤돌소득이 노동 공급을 위축시킬 가능성은 낮으며 경제활동 참여 유인을 위한 근로 인센티브 등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디딤돌소득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한 추가 실험 모델을 개발하고 디딤돌소득-사회서비스 전달체계 구축방안, 근로유인 제고 방안, 복지재원의 점진적 확보방안을 연구할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 맞춤형 실행 모델도 논의 중이다. 시 내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디딤돌소득을 생계급여와 기초연금 등 36개 현행 복지제도와 통합·연계하면 효율적 복지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모든 국민에게 같은 액수를 나눠 주는 기본소득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포기한 무차별적 복지에 불과하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존을 키우는 복지'가 아니라,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 복지'인 디딤돌소득"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사회복지정책인 '디딤돌소득' 적용에 따른 변화. 서울시
서울시 사회복지정책인 '디딤돌소득' 적용에 따른 변화. 서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