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취재본부 권병건기자
경북 예천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이 국가유산청 국보 지정 고시를 통해 국보로 승격됐다. 고려 석탑의 형식과 미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표지적 유산으로,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국가 차원에서 공식 인정받은 것이다.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국보로 승격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높이 4.3m, 건축면적 6.4㎡ 규모로 신라계 석탑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린 구조로, 고려 현종 2년(1011)에 건립됐음을 알 수 있는 명문이 남아 있어 조성 연대가 명확한 점이 큰 특징이다.
이 석탑의 가장 두드러진 가치는 총 190자에 달하는 명문이다. 기단 갑석 하단과 면석에 새겨진 명문은 고려 시대 석탑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으로, 이 중 188자가 판독돼 학술적 신뢰도가 매우 높다.
명문에는 석탑 건립 과정에서 광군(光軍)이 동원됐다는 기록이 포함돼 있어, 고려 초기 군사제도의 운영 방식과 조직 구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또한 미륵 향도와 추향도 등 신라 향도를 계승한 지방 향촌 조직의 변화 양상도 함께 확인돼, 고려 시대 지역 사회 구조와 신앙, 공동체 운영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자료로서 역사·사회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건축사적 가치 역시 탁월하다.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인 이층 기단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1층 탑신 받침석을 추가하는 등 고려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분명히 보여준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석탑 양식 변화를 집약적으로 담아낸 대표 작품으로, 한국 석탑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다는 평가다.
문화유산의 진정성과 완전성도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세 차례에 걸친 발굴·시굴 조사를 통해 개심 사지의 존재와 통일신라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구층이 확인됐고, 석탑의 기초 구조 역시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석재 분석 결과 기단부·탑신부·옥게 부 등 총 29개 부재가 모두 동일한 역질사암으로 확인돼, 건립 이후 부재 교체 없이 천년의 원형을 유지해 왔음을 뒷받침했다.
이번 국보 승격을 계기로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고려 시대 석탑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예천을 상징하는 국가적 문화유산으로서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천군 관계자는 "개심사지 오층석탑의 국보 지정은 예천이 지닌 역사·문화적 위상이 국가적으로 공인된 매우 뜻깊은 성과"라며 "고려 시대 사회와 군사, 향촌 문화를 생생히 전하는 이 소중한 유산을 국보에 걸맞게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국보로 승격 상층기단 갑석 하부 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