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기자
일본 도쿄의 한 고급 회원제 개별 사우나에서 30대 부부가 화재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사우나실의 비상경보 장치가 꺼져 있었고, 출입문 손잡이마저 고장 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나 경찰이 운영업체의 안전관리 책임을 수사하고 있다. 17일 아사히신문과 NHK, 닛테레 등 현지 언론은 지난 15일 정오 무렵 도쿄 미나토구 아카사카에 위치한 고급 개별 사우나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마쓰다 마사야(36) 씨와 아내 요코(37) 씨가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사고가 발생한 아카사카의 고급 회원제 사우나. X(엑스)
부부는 사우나실 출입구 인근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으며, 남편이 아내를 감싸듯 엎드린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 정황상 마지막 순간까지 탈출을 시도하며 아내를 보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숨진 마쓰다 씨는 도쿄 인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유명 인플루언서로 알려졌으며, 부부에게는 어린 자녀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어린 딸의 사진과 함께 "이 아이가 드레스를 입을 때까지 살고 싶다"는 글이 남아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부부는 사고 당일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해당 사우나실을 예약했으며 입실 약 1시간 뒤 사우나실 내부에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외부 연기 감지기가 작동해 직원이 소방서에 신고했고, 소방대가 도착했을 당시 사우나실 문은 닫힌 상태였다.
현장 조사 결과 출입문에 설치된 회전식 나무 손잡이는 안팎 모두 분리돼 바닥에 떨어져 있었으며, 돌려서 문을 열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로 인해 부부가 사우나실 안에 갇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또 사우나실 내부에는 비상 버튼이 설치돼 있었지만, 이를 관리하는 사무실 내 수신 장치의 전원이 꺼져 있어 버튼을 눌러도 작동하지 않았던 사실도 확인됐다. 운영업체 대표는 경찰 조사에서 "수신 장치의 전원을 지금까지 한 번도 켠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당시 사무실에는 직원이 상주하지 않았던 점도 드러났다.
수사 당국 발표를 보면, 사우나실 내부에서는 비상 버튼을 누르려 한 흔적과 함께, 부부가 사우나 스톤을 수건으로 감싸 출입문 유리를 깨려 했던 정황도 발견됐다. 남편의 손에서는 피하출혈이 확인됐고, 출입문 유리에는 여러 차례 두드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화상, 고온 환경 노출, 연기 흡입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불은 고온의 사우나 스톤에 수건이 접촉하면서 시작돼 나무 벤치와 벽으로 번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적 안전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한 건축 전문가는 NHK 인터뷰에서 "고온의 밀폐 공간에서는 비상시 문을 밀기만 해도 열리는 구조가 바람직하다"며 "회전식 손잡이는 고온 환경에서 파손 위험이 크고, 탈출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운영업체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 여부와 사망 간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현장 재현 실험 등 추가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해당 사우나는 이용 요금이 6만 엔(약 56만 8000원)에서 최대 39만 엔(약 370만 원)에 이르는 고급 시설로 알려졌다. 운영 업체는 성명을 내고 유족에 사과했고 당분간 영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