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진기자
장기간 침체를 겪었던 제약·바이오 섹터가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헬스케어 지수가 수년간의 정체기를 지나 반등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역시 수급과 기술, 정책 환경이 맞물리며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시장에선 제약·바이오 비중 확대를 권고하고 나섰다.
제약·바이오 섹터는 올해 초 미국이 의약품 관세 정책과 함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약가 인하를 시행하며 글로벌 제약사의 가격 전략을 뒤흔들자 부진한 주가 수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2분기 들어 글로벌 빅파마와 미국 행정부의 관세 및 약가 인하 협상으로 시장은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도 반등에 나섰다. 특히 시가총액 상위 종목 다수가 바이오테크 기업으로 구성돼 있는 코스닥의 경우 지수와 업종 간 높은 상관성을 보였고, 올해 1월과 비교해 11월 코스닥 제약 지수는 130%가 넘게 성장했다.
김승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정책 리스크 해소 ▲금리 인하 ▲약가 인하 및 특허 만료 대비 위한 사업개발(M&A, 라이선스 딜)이 증가하며 긍정적인 주가 흐름을 보였다"면서 "2026년에도 의약품 산업 밸류체인(상업화, 생산, R&D) 전반에서 레벨 업이 지속되며 제약·바이오 섹터의 강세를 예상한다"고 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2026년 산업기상도 전망 조사'에서 바이오업종에 대한 양적·질적 성장 기대감을 드러냈다. 올해 하반기부터 ADC(항체-약물 접합체) 등 고부가가치 신약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의 글로벌 기술수출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내년도 다국적 제약사와의 공동개발·기술이전 협력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국내 CDMO(의약품 위탁개발생산) 대규모 설비 가동 본격화와 미국 생물보안법(바이오보안법·Biosecure Act) 통과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했다.
미국이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발의한 생물보안법은 미국 국방수권법(NDAA) 상·하원 타협안에 포함돼, 사실상 통과 수순을 밟고 있다. 이 법은 미 행정부를 비롯해 관련 기관과 정부 지원금을 받는 기업들이 '우려 기업'에 해당하는 중국 바이오 기업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방수권법은 미국의 국방 예산 편성과 정책 기조를 정하는 법안이다.
생물보안법의 주요 표적 기업으로 중국 우시앱텍, 우시바이오로직스, BGI 등이 지목돼 왔다. 해당 법안이 연내 통과하면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할 위기에 놓인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엔 반사 이익을 누릴 기회가 생겼다.
정이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법안은 중국 CDMO 중심의 기존 바이오 공급망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공급망 다변화 과정에서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국내 CDMO 기업들의 존재감이 다시 부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 생물보안법의 수혜 기업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꼽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분할하며 일부 글로벌 고객사의 이해상충 우려를 해소했다. 셀트리온은 미국 제약기업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공장을 약 4600억원에 인수했다. 미국의 관세 위험을 제거하고자 미국 내 생산 시설을 확보한 것이다.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국내 항체 CDMO 전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저분자화합물 전문 CDMO 유한화학의 수혜 가능성이 있다"면서 "셀트리온은 미국 관세 대응 현지 생산 및 미국 CMO(위탁생산) 확대를 위해 릴리의 생산 시설을 인수해 CMO 계약을 체결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또한 미국 진출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올해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비만치료제의 성장과 함께 리보핵산(RNA) 기반 유전자치료제 등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관심을 보이는 신기술 개발 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삼정KPMG는 '2026년 국내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비만, 항암제 중심의 바이오의약품 시장 성장으로 단일클론항체와 단백질, 펩타이드(GLP-1) 분야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면서 "내년에는 경구형 비만치료제가 출시되고 국내사의 비만 영역 주요 임상 결과도 다수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 등이 GLP-1 계열 비만치료제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여러 곳도 GLP-1 기반 비만약을 개발하고 있다.
아울러 삼정KPMG는 "세포·유전자치료제와 디옥시리보핵산(DNA), 리보핵산(RNA) 치료제 분야 임상 및 상업 파이프라인이 확대될 것"이라며 "이는 국내외 CDMO 수요를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오는 18일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는 알지노믹스에 대한 관심도 크다. 이 회사는 RNA 편집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상장 전에 글로벌 제약사에 2조원에 가까운 기술이전을 성사시키며 시장의 기대를 끌어모았다. 질병의 원인인 돌연변이 유전체(RNA)를 교정하는 데 있어 단순히 잘라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통째로 교체 가능한 편집력이 기술강점으로 꼽힌다.
이명선 DB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기술 트렌드에 맞추어 RNA치료제 분야의 에스티팜, 상장예정인 알지노믹스, 뇌혈관장벽(BBB) 투과 대해서는 에이비엘바이오, 비만·대사 분야에서는 경구용 비만치료제 개발 중인 일동제약, 그리고 자가면역질환 분야에서는 에이프릴바이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