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민기자
올해 68개 지방자치단체와 9개 교육청이 예산을 관리하는 '금고지기' 약정 기한이 만료돼 새 금고 선정 절차를 진행했다. 그 결과 경기 부천시 제2금고가 KB국민은행에서 IBK기업은행으로 교체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존 은행이 금고 지위를 유지했다. 특히 NH농협은행은 올해 금고 계약의 42%를 차지했다. 이를 두고 금고 선정 기준이 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비판과 지방 금융편의성을 제공해온 농협은행이 유리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또한 지역 밀착도가 높은 지방은행과 상호금융권이 경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준을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1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68개 지자체(광역 및 기초자치단체 포함)와 9개 교육청의 올해 금고 선정 절차는 경북교육청 1곳을 제외하고 마무리됐다. 119개 금고(동일 지자체의 1·2금고는 각각 별도 1개로 산정) 가운데 농협은행은 69개를 확보해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이어 광주은행(12개), 전북은행(8개), 하나은행(7개), 경남은행(6개), iM뱅크(5개), 국민은행(4개), 신한은행(4개), 부산은행(3개), 기업은행(1개) 순이다. 교육청 금고 역시 경북교육청을 제외한 8곳(경기·경남·대전·울산·인천·전북·충남·충북)이 모두 농협은행을 다시 금고지기로 선정했다.
지역별 결과를 보면 광주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농협은행이 고르게 금고를 확보했다. 구체적으로 강원 4곳(농협 3·신한 1), 경기 9곳(농협 7·국민 1·기업 1), 경남 12곳(농협 6·경남 6), 경북 12곳(농협 7·iM 3·신한 1·국민 1), 광주 4곳(광주 2·국민 2), 대구 3곳(iM 2·농협 1), 대전 7곳(하나 6·농협 1), 부산 6곳(부산 3·농협 3), 울산 4곳(농협 4), 전남 22곳(농협 12·광주 10), 전북 17곳(농협 9·전북 8), 충남 3곳(농협 2·하나 1), 충북 8곳(농협 6·신한 2)에서 금고가 결정됐다.
지자체는 세입 예산을 금융기관 한 곳 또는 두 곳의 계좌에 예치해 관리하며, 금고 약정은 조례에 따라 3~4년 주기로 갱신된다. 각 지자체 금고지정심의위원회가 금고를 선정하는데, 기본적으로 행정안전부 예규를 따르되 세부 기준은 지자체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올해 선정 결과뿐 아니라 그간 금고 유치 시장은 시중은행, 특히 농협은행이 사실상 독점해왔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각 은행으로부터 받은 지자체 금고 현황(교육청 포함)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농협은행은 전체 305개 금고 중 204개 금고를 맡고 있었다. 이는 전체 금고 수의 3분의 2(약 67%)에 해당한다. 시중은행 전체(iM뱅크 제외)로는 268개 금고(약 88%)를 확보하고 있었다. 금고 예치금액으로 보면 전체 약 612조원 중 농협은행이 420조4500억원으로 전체의 68.72%를 담당했으며 시중은행은 546조원(전체 89%)을 유치했다.
이처럼 시중은행이 대부분의 금고를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로 지정 기준이 이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행정안전부의 지자체 금고지정 평가항목 및 배점기준을 보면 평가 항목은 크게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 안정성 ▲자치단체에 대한 대출 및 예금금리 ▲지역주민이용 편의성 ▲금고업무 관리능력 ▲지역사회 기여 및 자치단체와의 협력사업 ▲기타 사항으로 구성된다. 이 중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 안정성' 부문에서 외부기관 신용조사가 국외평가기관 4점, 국내평가기관 4점 등 총 8점이 배정돼 있다. 지방은행은 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국제 신용등급 평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지역주민 이용 편의성과 지역사회 기여 항목에서는 농협은행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있다. 관내 지점 수를 세는 기준이 지자체마다 다른데, 농협은행의 경우 은행 지점뿐 아니라 상호금융에 해당하는 단위조합 수까지 숫자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어서다.
물론 시중은행에 유리하다는 비판에 대한 반론도 있다. 농협은행의 경우 지방 곳곳에 금융편의성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만큼 지역사회 공헌도가 타행에 비해 클 수밖에 없어 금고 선정은 지방 금융접근성 확대와 지역사회 기여 노력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올해 3분기 기준 농협은행 점포 수는 1064개로, 나머지 주요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 평균 점포 수인 671개보다 393개나 많다. 비수도권 점포 비중도 농협은행은 약 63%로 타행 평균인 33%보다 높다. 농협은행 고위관계자는 "다른 시중은행은 비용을 이유로 지방 지점을 철수하는 경우가 많지만, 농협은행은 대부분 지역에 점포를 유지하고 있다"며 "여기에 3~4년 동안 사회공헌을 꾸준히 하고 있고 외부 평가위원들이 객관적으로 금고심의위원 활동을 하기 때문에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간 경쟁을 넘어 지역에 기반을 둔 지방은행과 상호금융도 금고 유치 경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방은행에는 해외 신용등급 평가를 폐지하거나 지역민 이용 편의성 배점을 강화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상호금융의 경우 애초에 금고 경쟁의 평가 대상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필요하다. 지방회계법에 따라 은행법상 은행만 금고로 지정할 수 있으나, 특별회계나 기금 업무(제2금고)는 상호금융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지자체가 평가 시 금융위원회의 지역재투자 평가 결과를 '자치단체 자율항목'으로 활용하는데, 이 평가에서 상호금융은 애초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송 의원은 "지역 상호금융을 통해 지방 금고가 지역 내에서 선순환하며, 지역경제와 동반상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금고지기 유치 경쟁에서는 이자율이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지자체 금고 선정과 이자율 문제를 언급한 이후 지방회계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이달 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금고 은행을 바꾼 지자체장은 해당 금융사에서 수취한 금리를 공개해야 하는 게 골자다. 기존 공개 중인 항목인 협력사업비 외에도 금리까지 공개될 경우 금고 유치를 위해 은행들이 금리 경쟁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자율 배점 비율을 높이는 방안까지 정치권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10월 예금금리에 대한 배점 비율을 높이고, 협력사업에 대한 배점 비율은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한 '지방회계법'을 대표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