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기자
대학생 김모씨(23)는 최근 생활비 등 급전이 필요해 인터넷에 소액 대출을 검색했다가 낭패를 볼 뻔했다. 일명 '휴대폰깡'으로 불리는 불법 대출의 늪에 빠질 뻔했기 때문이다. 업자는 김씨에게 "최신형 휴대폰을 개통해서 넘겨주면 기기당 100만원을 바로 입금해 주겠다"고 유혹했다. 심지어 "통신사에서 본인 확인 연락이 오면 주소와 기종을 거짓으로 말하라"는 구체적인 대응 지침까지 내려줬다.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신용자나 대학생 등을 노린 '내구제 대출(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생성형 AI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신용자나 대학생 등을 노린 이른바 '내구제 대출(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소액 대출 및 휴대폰깡 등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내구제 대출을 취급하는 광고 글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내구제 대출은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선불 유심 개통, 휴대폰 할부 개통, 가전제품 렌털 등을 조건으로 자금을 융통해 주는 불법 사금융이다. 대출 희망자가 본인 명의로 물건을 사서 업자에게 넘기면 업자가 이를 매입하는 형태로 당장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텔레그램 상에서 선불 유심을 개당 8만원에 구입한다는 업자에게 직접 연락을 시도하자 신용 정보 조회 인증을 요구했다. 신용 정보 조회 화면을 캡처해 보여주니 "선불 유심 3개까지 개통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불법 여부를 묻는 말에는 "처벌받을 것 같으면 누가 이걸 하겠느냐"며 "매입한 유심은 업체마다 용도가 다르지만, 주로 업무용이나 상담, 홍보용으로 쓰인다"고 안심시켰다.
텔레그램으로 선불유심을 개당 8만원에 매입한다는 업자와 나눈 대화. 텔레그램 캡처
하지만 이렇게 거래된 유심과 휴대폰은 범죄에 쓰일 가능성이 높으며 판매자도 처벌받을 수 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 본인의 개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명의를 대여해 유심 등 통신 서비스를 개통해 주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염흥렬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명예교수는 "여러 개의 휴대전화 유심칩을 꽂아두고 해외에서 온 전화가 마치 국내에서 걸려 온 것처럼 발신 번호를 조작하는 심박스(SIM box) 장비에 악용될 수 있다"며 "당장은 금전적 어려움이 있어서 한 선택이겠지만, 대포폰 등 범죄에 활용될 수 있는 만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