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유녹(U-KNOCK) 2025 in USA' 현장
지난 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중심가에 있는 로우스호텔 2층. '유녹(U-KNOCK) 2025 in USA' 로고가 찍힌 현수막 아래로 한국 기업 부스가 빼곡하게 들어섰다. 모니터에서 인공지능(AI), 시각효과(VFX), 증강현실(AR), 감정기술(Emotion Tech) 등 첨단 기술이 담긴 시연 화면이 연이어 재생되고, 투자자와 제작자들이 그 앞을 빠르게 오갔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단순한 박람회가 아니다. K콘텐츠가 기술과 자본을 무기로 세계와 실전 경쟁을 벌이는 현장이다.
장성호 모팩 스튜디오 대표는 무대에서 자사의 기술을 시연했다. 영화 '킹 오브 킹스'에 적용된 실시간 애니메이션 변환 시스템이다. 언리얼 엔진으로 배우의 연기를 즉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바꿔준다. 카메라 워킹, 조명, 배경까지 동시에 합성한다.
장 대표는 "기술은 창의력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시간 사전시각화를 적용하면 비용이 투입되기 전에 크리에이티브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전체를 미리 만들고 편집까지 끝낸 상태에서 프로덕션을 본격화할 수 있어, 리스크 관리에 유리하고 제작비와 시간을 최소 30% 이상 줄일 수 있다."
박인찬 스튜디오더블유바바 대표는 부스에서 언리얼 엔진을 활용한 제작 시스템을 내세웠다. "언리얼 엔진은 단순 렌더링 툴이 아니라 실시간 제작 시스템이다. 기존 렌더링 비용을 약 50%, 제작 일정을 25% 단축할 수 있다."
'유녹(U-KNOCK) 2025 in USA' 현장
시연을 지켜본 투자사들은 실제 프로젝트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지 등을 묻고 별도 미팅을 요청했다. 대체로 제작 방식 자체가 바뀌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이스트레인저 부스에도 투자사들의 발길이 몰렸다. 인간의 표정·음성·맥박을 분석해 실시간으로 감정 변화를 시각화하는 감정 AI 기술 때문이다. 김동국 대표는 "광혈류(PPG), 뇌파(EEG), 표정 인식(FER)을 결합한 다중 신호 감정 분석은 단일 신호보다 정확도가 15~25% 높다"며 "당사 시스템은 다양한 생체 신호를 통합해 정확도 95% 이상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선보인 '인사이트 플로우'는 관객의 생체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감정 곡선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하는 솔루션이다. 김 대표는 "제작사가 테스트 시사회에서 관객의 감정 몰입 지점과 이탈 지점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밀레니얼웍스의 '애니모먼트(ANIMOMENT)' 부스 앞에도 줄이 생겼다. 1분 만에 일반인을 버추얼 캐릭터로 변환하는 AI 키오스크다. 송유상 대표는 "핵심은 속도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즉시 변환과 콘텐츠 생성이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커즈의 진샘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공간 맞춤형 미디어아트 플랫폼 'WAA(Where Art's Alive)'를 시연하며 투자자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WAA는 공간 이미지를 인식해 색상·질감·조명·배치 등을 분석하고, 목적에 맞는 콘텐츠를 자동 추천하거나 새로운 미디어아트를 재구성한다"고 설명했다.
샵팬픽의 최영호 대표는 버추얼 크리에이터 IP 육성과 팬덤 굿즈 비즈니스를 공개했다. 그는 "IP와 세계관 기획부터 보컬·성우 트레이닝까지 기존 연예 엔터테인먼트와 유사한 방식으로 지원한다"며 "약 6개월간 모의 방송과 라이브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가 이뤄진다"고 부연했다.
'유녹(U-KNOCK) 2025 in USA' 현장
투자사 관계자들은 AI 제작 기술과 감정 데이터 활용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생산성은 이미 세계 수준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우성배 콘진원 콘텐츠금융지원팀장은 "각 권역 파트너사 및 전문가들과의 사전 IR 및 멘토링, IR 피칭 리허설 등으로 영어 IR 역량 부족을 보완하고 있다"며 "현지 법률·지식재산권 컨설팅, 법인 설립 자문, 계약서 번역 비용도 바우처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콘진원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국내 콘텐츠 수출은 전년보다 1.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산업 수출이 역성장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반등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술형 IP가 늘어날수록 중소 제작사의 진입장벽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고 본다. 물리적 세트 비용, 장기간 촬영 등 기존 제작비 구조가 부분적으로 해소되고, 기술·라이선싱·플랫폼 연계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행사장 무대 위에는 더 이상 '한국을 알리자'는 표어가 없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문장은 단순했다. "Let's do busi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