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 과학적 입증했다… 부산대 연구팀, 정신병리기전 세계 첫 규명

한국 고유 질환 ‘화병’, DSM-5-TR 공식 등재 이후 생물·심리학적 근거 밝혀

'한(恨)'과 감정 억압에서 비롯된 한국 고유의 문화적 질환으로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정신신체질환(psychosomatic disorder)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대학교(총장 최재원)는 4일 "한의학전문대학원 채한 교수 연구팀이 화병의 정신병리적 임상 특징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연구 논문을 국제 학술지 '바이오피지코소셜 메디슨(BioPsychoSocial Medicine)' 지난 10월 30일 자 온라인판에 게재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부산대 채한 교수팀과 경희대 김종우 교수팀(강동한방병원), 경성대 이수진 교수팀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바이오피지코소셜 메디슨'은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가 발행하는 SSCI 등재 국제 학술지로, 생물·심리·사회적 요인이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저널이다.

'화병'은 장기간 누적된 분노와 억압된 감정이 해소되지 못한 채 내부화되면서 열감, 불면, 우울, 가슴 답답함, 두통 등 심신 증상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2022년 개정된 미국정신의학회 진단기준 DSM-5-TR에도 공식 등재돼 있지만, 그동안 정신병리적 기전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상징적 질환으로 인식돼 왔다.

연구팀은 화병 환자 118명을 대상으로 한의학적 '음양심리이론'을 표준화한 사상성격검사(SPQ)를 통해 행동·인지·정서 반응 특성을 정량 분석했다.

그 결과, 화병 환자에게서 △높은 행동적 과민성(SPQ-B), △낮은 인지적 경직성(SPQ-C), △낮은 정서적 공감력(SPQ-E) 등 고유한 패턴이 관찰됐다.

이 프로파일은 화병 환자의 심리 증상 26.0%, 신체 증상 14.3%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행동적 과민성과 낮은 정서 공감이 분노 폭발·불안·우울로 이어지는 기전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채한 부산대 교수는 "화병의 독특한 정신병리 프로파일을 발견함으로써 우울증 등 다른 정신질환과 손쉽게 구별할 수 있게 됐다"며 "사상성격검사가 향후 정신질환의 맞춤형 치료 설계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우 경희대 교수는 "감정 억압 → 신체화 → 분노 폭발로 이어지는 화병의 악화 메커니즘을 단계적으로 제시한 첫 연구"라며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으면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가 폭발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수진 경성대 교수는 "SPQ 결과를 활용해 행동 안정화(SPQ-B 감소), 긍정적 인지(SPQ-C 강화), 정서적 공감(SPQ-E 강화)을 유도하는 치료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번 연구는 '한(恨)'과 감정 억압이라는 한국적 정서에서 출발한 화병을 국제적 학문 언어로 설명한 첫 시도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화병은 더 이상 문화적 상징이 아닌, 정신병리적 근거가 명확한 과학적 질환임을 입증했다"며 "문화정신의학(cultural psychiatry)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의미 있는 성과"라고 전했다.

왼쪽부터 채한 교수, 김종우 교수, 이수진 교수.

영남팀 영남취재본부 조충현 기자 jchyou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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