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파산은 실패가 아닌 복귀하는 과정”[인터뷰]

13년간 개인파산관재인 활동
2400명 넘는 채무자 만나
대부분 위기 몰린 평범한 이웃
"재기할 수 있도록 길 열어줘야"

"파산은 실패가 아닙니다.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 과정입니다."

13년간 개인파산관재인으로 활동해온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 회장(연수원 29기·법무법인 시니어)은 파산을 '실패의 낙인'이 아닌 '복귀를 위한 제도'로 정의했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시니어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개인파산관재인은 법원이 선임하는 전문가로, 파산 신청인의 재산을 조사·관리하고 채권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왕 변호사는 그동안 파산관재인으로 활동하며 연예인, 의사, 자영업자 등 2400명이 넘는 채무자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파산 제도가 단순히 빚을 면제해주는 장치가 아니라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설 수 있게 하는 복귀 시스템임을 실감했다고 했다.

왕 변호사는 "처음에는 파산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가족의 병간호, 실직, 사업 실패 등 예기치 못한 위기 속에 몰린 평범한 이웃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은 다시 일어서려는 도전자들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삶이 무너질 정도로 고통받으며 파산 신청을 하셨던 분이 있었는데, 최근 잘 지낸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그럴 때 되게 감사함과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여변 회장으로서 외연 확장과 내부 결속을 동시에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변은 취약계층을 위한 공익 소송 지원, 관련 정책 및 제도개선 등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이다.

왕 변호사가 지난해 1월 회장으로 취임한 뒤 여변은 '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 무료 법률지원사업'을 주관해 1년여 만에 500건이 넘는 법률 지원을 진행했다. 또 체육대회나 봉사활동 등 회원 간 교류와 활동도 적극 추진해왔다. 왕 변호사는 "여변은 6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조직이지만, 내부가 단단해야 외부와의 협력도 힘을 받는다"며 "회원이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걸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후배 여성 변호사들에게는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나치게 완벽하게 맞추려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왕 변호사는 "완벽보다 지속가능한 방식이 필요하다"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약받지 않고, 각자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시니어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왕 변호사는 사회적 논의가 진행 중인 '장기소액연체채권 소각'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장기소액연체채권은 7년 이상 상환이 불가능한 채무자들의 소액 채권을 정부와 금융권이 공동 부담으로 소각하는 제도다.

최근 정부는 장기소액 연체자의 빚 탕감을 위한 배드뱅크 '새도약기금'을 출범시킨 바 있다. 왕 변호사는 "이미 경제활동이 단절된 이들을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용을 회복하고 재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사회가 함께 부담해야 할 영역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그는 '파산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의 과제'라며 "사람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게 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부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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