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반쪽을 찾는 인간, 융합을 거부하는 현실

영화 '투게더' 위험한 결합의 현실
사랑의 기원담이 던지는 현대적 질문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독특한 인간 기원담을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태초의 인간은 둥근 몸에 머리가 둘, 팔다리도 각각 넷 달린 완전한 존재였다. 남남, 여여, 남녀로 구분됐는데, 힘과 자만에 취해 신들에게 도전했다. 분노한 제우스는 그들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버렸다. 머리 하나, 팔 둘, 다리 둘만 남은 반쪽들은 그때부터 잃어버린 나머지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됐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것이 사랑의 기원이라고 설명한다.

영화 '투게더' 스틸 컷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랑은 본래 하나였던 존재가 다시 완전해지려는 충동, 즉 결핍을 메우려는 인간 본성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부족함을 자각하기에 타인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제우스의 처벌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한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비록 불완전해졌으나, 적어도 '나'와 '너'를 구분하며 서로를 향해 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생크스 감독의 영화 '투게더'는 이런 양면성을 흥미롭게 변주한다. 연인 밀리(앨리슨 브리)와 팀(데이브 프랑코)은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이주한다. 밀리가 지역 초등학교 교사로 취직하자, 음악가 지망생인 팀은 수동적으로 뒤따른다.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두 사람은 동굴 속 신비한 수원을 접한 뒤 기이한 변화를 겪는다. 강력한 끌림이 생겨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된다. 곧 정신이 흐려지면서 자아가 합일 속에서 지워져 간다.

영화 '투게더' 스틸 컷

신체적 결합은 인간관계에서 정체성과 경계가 흐려지는 경향의 은유로 읽힌다. 서로에게 깊이 의존하다 보면 자기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감정적 얽힘의 어두운 면을 코드펜던시(codependency)의 공포로 시각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한 사랑의 본질을 온전히 담아내는지는 의문이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여정'이 불건강한 의존 관계에 대한 경고로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우스의 분리가 갖는 철학적 깊이가 현대적 관계 문제로 축소된 듯한 인상을 준다. 메시지 전달 방식도 지나치게 직설적이어서, 바디 호러 장르 특유의 공포나 철학적 여운을 스스로 제한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투게더'의 접근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현대인에게는 추상적인 고전 철학보다 구체적인 관계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방식이 더 유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가 2500년 전의 사랑관을 보여준다면, 이 영화는 21세기 개인주의 속 병리적 사랑을 다룬다. 시대가 달라지면 사랑의 위험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화 '투게더' 스틸 컷

영화가 묘사하는 물리적 결합의 공포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특히 강제로 붙어 있어 개별성을 잃고 고통받는 두 사람의 모습은, 24시간 연결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사생활과 개인 공간이 사라지는 현실과 겹쳐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투게더'는 고전적 사랑 철학의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적 우화로 각인될 가능성이 크다.

문화스포츠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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