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기자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EU)을 향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자극하는 논평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연합뉴스는 12일(현지시간) 영국과 EU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이 "영국 측은 EU 지도자들에게 평화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논평은 자제하자고 다독이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영국 텔레그래프 보도를 전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소식통은 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영국은) 공개적으로는 미국에 요구하지 않는다"며 "유럽인들의 많은 방식이 미국을 짜증 나게 할 수 있고 레드라인을 넘으면 트럼프를 짜증 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공개 발언을 최대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텔레그래프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그간 취해온 태도와 상통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 2월 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하는 외교 참사가 벌어졌을 때 EU 지도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앞다퉈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당시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SNS에 "자유세계에는 (미국이 아닌) 새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도미니크 드빌팽 전 프랑스 총리는 "미국을 더는 유럽의 동맹으로 간주할 수 없다"며 "이제 러시아, 중국, 미국이라는 3개의 비(非)자유주의 초강대국을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스타머 총리는 대중을 향해 공개적인 지지 표명은 하지 않았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사이를 중재하려 연쇄 전화 통화에 나섰고, 이 같은 움직임이 두 정상의 이후 대화에 어느 정도 효과를 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종전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정작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이 자리에 초청받지 못해 논란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회담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와 EU에서 바라는 영토 보전과 전후 안보 보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등을 낙관할 수 없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EU 고위급들은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고려하도록 공개적으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날도 헝가리를 제외한 EU 26개국은 '우크라이나에 관한 EU 정상들의 성명'을 발표해 독립·주권·영토 보전의 원칙을 비롯한 국제법을 존중하는 평화를 촉구했다. 칼라스 EU 고위대표는 "러시아가 완전하며 무조건적인 휴전에 동의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양보도 논의해서는 안 된다"며 "대서양의 단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