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하기자
북한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단순한 승차권 외에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공민증'까지 반드시 소지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 간 이동 자체가 정부의 통제를 받는 체계 속에서, 국가가 철도 이용을 통한 주민의 동선을 철저히 관리하려는 목적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북한의 관영매체인 민주조선이 지난달 22일자 보도를 통해 새롭게 제정된 '철도려객수송법'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고 12일 연합뉴스가 전했다. 해당 법은 철도 이용자의 행동 요령과 신분 확인 절차를 포함해 철저한 이동 통제의 의도를 드러냈다.
법령에 따르면 "려객은 공민증(시민증)과 같은 필요한 증명서를 지참하여야 한다"며, "해당 증명서가 없는 려객은 려객렬차로 려행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신분 확인을 통해 해당 지역 간 이동이 허용된 사람인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단순한 기차 이용뿐 아니라, 역사 내부 출입까지도 통제된다. 법은 "공민은 려객을 마중하거나 바래주기 위하여 철도역 구내로 들어가려는 경우 나들표가 있어야 하며 나올 때에는 안내성원에게 바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역 구내에 들어가기만 해도 별도의 '나들표'라는 일시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하며, 출입 시 이를 제시해야 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 같은 규정은 주민들의 자발적 이동을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국가의 승인 없이는 도시 간 이동조차 불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광범위한 이동 제한 조치로 평가된다.
수화물 기준도 엄격하다. 탑승자는 최대 20kg의 짐을 2개까지만 휴대할 수 있고, 각 짐의 길이는 1m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항공사 수하물 규정보다도 까다로운 수준이다.
또한 철도 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정도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다. 법규는 "술판, 먹자판을 벌리거나 사회주의 생활 양식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거나 우리 식이 아닌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교통수단 내에서조차 외부 문화를 경계하고, 체제 이념에 맞는 행동만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법은 승객 개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기관·기업소·단체가 책임지고 '승객 예절'을 교육하고 홍보하도록 지시했다.
이번 '철도려객수송법'은 철도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측면보다, 주민의 일상적인 이동조차 국가가 직접 관리·감독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법령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