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잠자는’ 치매머니 유출 실태 확인 나선다

치매머니 요양·간병에 쓰일 수 있어야
신탁법 개정·특별법 제정 필요

정부가 154조원에 달하는 ‘치매머니(고령 치매 환자의 자산)’의 유출 실태와 자산 보호 체계 구축에 착수한다. 치매 단계별로 달라지는 자산 변화 흐름을 추적해, 자산 유용 위험 실태를 확인하고 중증도에 따라 변화하는 요양과 돌봄 수요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치매머니가 노인 본인의 치료와 간병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신탁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 부동산 역모기지 활용 방안 등을 포함한 대책 마련도 검토하고 있다.

154조 치매머니 ‘언제 줄고, 어디에 새고 있나' 분석

2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치매머니 후속 연구 돌입을 논의하고 있다. 확인된 데이터를 통해 치매머니의 유출이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파악하기 위한 정량 분석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저고위는 지난 6일 정부 차원의 치매머니 전수조사를 처음으로 진행해 2023년 기준 고령 치매 환자 124만명이 보유한 자산(소득+재산)은 153조5416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저고위는 치매머니 규모 확인에 그치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치매 단계(경도→중등증→중증)별 치매 노인의 자산 변화 흐름 파악에 나선다. 치매 진행 과정에서 변화하는 자산의 흐름을 분석해 치매머니에 대한 유용 위협이 빈번하게 실재하는지를 파악하고, 요양비·병원비 등 지출 구조 변화 양상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자식이나 간병인 등 제3자가 고령 치매 환자의 금융정보를 알아내 무단으로 자산을 빼내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구체적인 데이터로는 확인된 적이 없다.

치매머니가 노인 본인의 간병비와 같은 돌봄 비용에 원활히 쓰일 수 있도록 신탁법 개정이나 특별법 도입을 포함한 대책 마련도 검토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치매 판정을 받아 의사 능력을 상실하면 환자의 재산은 사실상 동결된다. 치매 환자 본인의 치료비로도 지출이 사실상 어렵단 의미다. 성년후견인제도(독자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피후견인에게 후견계약으로 선임된 후견인이 재산 관리뿐만 아니라 치료·요양 등 신상 문제까지 도움을 주는 제도)를 통해 환자의 진료비 사용을 향후 청구하는 방법이 있다. 다만 후견인 선임 절차의 복잡성이나 신뢰 부족 까닭에 우리나라에서 치매 노인의 성년후견인제도 이용이 저조하다.

일부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치매 신탁 상품이 존재하지만 이 역시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다. 현행 신탁법에 모호한 부분이 있어 관련 상품을 통한 대비에 여러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신탁법에 따르면 신탁계약은 ‘의사능력이 있을 때’만 체결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만약 자녀 등 보호자가 계약 당시 치매 부모는 이미 의사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할 경우 법적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어 제도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신탁법에는 ‘의사능력’이 무엇인지, 어떤 기준과 증빙(예: 진단서, 감정서 등)으로 판단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후견인, 신탁 못 건드린다…법의 불일치가 자산을 묶어

후견인제도와 신탁제도의 불일치도 치매머니의 활용을 막는 한계다. 현재 민법상 후견인은 치매 환자의 자산을 보호·대리 역할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신탁법에서는 후견인의 신탁 집행 권한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치매 발병 전 설정된 신탁계약이 현 상황과 맞지 않아도, 후견인은 정작 자산을 변경하거나 집행 방식에 개입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결국 신탁이 있어도 치매 노인의 자산이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한 채 묶여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저고위는 신탁법 개정 또는 치매 전용 특별법 제정을 통해 치매 노인의 자산이 자신들의 돌봄 비용에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신탁계약의 ‘의사능력’ 정의 및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고, 후견인이 일정 범위 내에서 신탁계약을 조정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신탁은 사전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서에 자산의 용도와 집행 권한을 명확히 설정하면 치매 발병 이후 가족이나 타인의 유용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저고위에서는 치매 노인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을 유동화해 자신의 돌봄 비용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본은 ‘후견+신탁’ 제도 결합 대응

일본은 2012년부터 ‘후견 신탁’을 제도화해, 민법상 후견제도와 신탁법 간 단절을 해소했다. 신탁법에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신탁할 수 있다’는 식의 명확한 조항을 넣어뒀다. 일본은 전체 성년 후견의 약 10%가 후견 신탁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견 감독인을 통해 수탁자의 집행을 상시 감시하는 구조도 제도화되어 있다. 가족의 자산 유용을 예방하고 치매 노인의 돌봄 목적에 자산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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