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선물로 한 마리씩 주자'…한국에선 민폐동물, 세계에선 귀하신 몸 '고라니'[뉴스설참]

(67)고라니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
한국은 농작물피해·교통사고로 '민폐동물'
국제사회선 귀하신 몸…멸종위기종 등록
영국 일부 개체 정착 성공 사례 주목도

편집자주'설참'. 자세한 내용은 설명을 참고해달라는 의미를 가진 신조어다. [뉴스설참]에서는 뉴스 속 팩트 체크가 필요한 부분,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콕 짚어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도 고라니 외교를 하자." 몇 년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나오고 있는 제안이다. 중국이 멸종위기종인 판다를 타국에 임대하며 외교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판다 외교 전략을 사용하는 것처럼 한국에 널리 분포한 고라니를 이용하자는 우스갯소리다. 한국에서 개체 수 과잉으로 유해 동물로 지정돼 있는 고라니는 전 세계적으로 개체 보호가 필요한 멸종위기종이다.

한국에서 고라니를 달가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환경부 추정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는 약 70만마리의 고라니가 서식하는데, 이는 전 세계 고라니 개체 수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과거 고라니를 사냥하던 늑대, 표범 등 천적이 사라지거나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고라니는 사실상 통제받지 않는 번식 환경을 갖게 됐다.

개체 수가 많다 보니 농민들에게 고라니는 '민폐 동물'로 불리기도 한다. 고라니는 주로 연약한 풀이나 어린나무 싹을 먹는데, 논과 밭에도 침입해 벼, 감자, 배추 같은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갉아 먹기 때문이다. 2023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농업정책보험금융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간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액 541억9600만원 중 약 17%에 해당하는 90억7300만원이 고라니에 의한 피해액이었다.

강원 강릉시 연곡면의 수확이 끝난 들녘에서 고라니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다. 연합뉴스

고라니는 동물찻길사고(로드킬) 희생 동물 중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년∼2024년) 발생한 고속도로 동물찻길사고 5300건 중 고라니(4426건·83.5%)가 가장 많았다. 뒤이어 너구리(343건·6.5%), 멧돼지(277건·5.2%) 순이다. 야간이나 새벽 시간대에 갑작스럽게 도로를 뛰어넘는 고라니 탓에 교통사고가 날까 봐 우려하는 운전자들이 많다.

과잉 개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부에서는 고라니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라니는 일정 조건 하에 포획이 허용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고라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포획 허가를 발급할 수 있다.

전 세계 고라니 개체 수 분포도. 국립생태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제 사회에서 고라니는 '귀하신 몸'이다. 2008년부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 목록(Red List)에 '멸종 취약종'(VU)으로 등록됐다. 당장 멸종 직전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서식지 파괴나 불법 포획 등의 위협이 계속될 경우, 가까운 미래에 멸종 위험이 높아질 수 있는 종이라는 뜻이다. 전 세계 동·식물 중 멸종 위험에 처한 종을 등급별로 분류해놓은 적색목록의 등급에는 ▲EX (Extinct·멸종) ▲EW (Extinct in the Wild·자연 상태에선 사라짐) ▲ CR(Critically Endangered·멸종 직전 단계) ▲EN(Endangered·고위험 멸종 위기) ▲VU(Vulnerable·멸종취약종) 등이 있다.

한국 외엔 중국과 러시아에 일부 개체가 서식 중이다. 중국 저장성·장쑤성·후난성 등 지역에선 약 1만~3만마리의 고라니가 서식하고 있지만 서식지 파괴와 도시화, 불법 포획 등으로 개체 수가 점차 줄면서 '국가 중점 보호 야생동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러시아에선 한반도와 접경한 연해주 일대 표범의땅 국립공원에서 2019년 처음 고라니가 관찰됐는데, 현재는 약 170마리 수준으로 개체군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엔 영국에서 고라니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19세기 말 런던동물원, 우번 애비 사슴공원 등이 고라니를 수입해 풀어놨는데, 일부 개체가 탈출하거나 방사되며 야생에 정착한 것이다. 현재는 잉글랜드 동부 지역에 소규모 개체군이 서식하고 있다. 습윤한 환경을 좋아하는 고라니의 생존 및 번식에 적합한 습지와 갈대밭 등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국에 번식한 개체군은 중국 본토에서 멸종된 유전형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임페리얼칼리지 런던과 영국사슴학회의 '유럽에 도입된 고라니의 보존 유전 연구'는 "영국에 정착한 고라니는 중국 본토에서 멸종한 개체군"이라며 "향후 고라니의 보전 및 복원,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에서 활용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획취재부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