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기자
"삼성전자가 이제 와서 밸류업 공시를 하려고 할까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절차가 본격화한 가운데 금융투자업계에선 현 정부의 자본시장 핵심 정책인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 추진 동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밸류업' 정책에 정통한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현시점에서 기업들이 윤(尹) 정권의 꼬리표를 단 정책인 밸류업 공시를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재까지 기업가치제고계획(자율공시) 공시 86개사, 기업가치제고계획예고 공시 11개사 등 총 97개 기업이 밸류업 공시를 진행했다.
계엄 사태가 발생했던 지난 3일 이후에도 기업은행, 파트론, KG이니시스, 이녹스첨단소재, 유안타증권, 현대엘리베이터, HD현대건설기계, AK홀딩스, 제주항공, HD현대미포, HD현대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 애경케미칼, 두산밥캣, HD현대, HD현대인프라코어, HD현대마린솔루션, HD현대일렉트릭, LG전자, NH투자증권, 애경산업 등의 기업들이 기존 계획대로 밸류업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현재 100여개에 가까운 밸류업 공시 중에서 삼성, 포스코, 한화, GS그룹의 밸류업 공시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10대 그룹 내에서 4개 그룹이 아직 밸류업 공시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해야 하는데 현 정권의 영속성이 불투명해진 데다,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이 부결되면서 기업들 입장에선 추진 동력 자체가 크게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금융 및 정치권의 밸류업 노력은 지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18일 기업 밸류업을 위한 코스닥 상장기업 공시담당자 설명회를 진행했다. 19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실제로 상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정책이 획기적인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당론 발의했다. 민주당은 다만 재계의 우려를 고려해 배임죄 구성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상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은 법사위 소위원회에서 30일 관련 공청회를 열고, 이르면 내년 초 본회의에서 해당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심사 일정이 늦춰지며 물리적으로 올해 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현 정부가 주도적으로 진행해 온 상법 개정에 대해 재계의 반대로 방향성을 확 틀면서 밸류업 동력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라며 "민주당이 총대를 메고 나섰지만, 지금처럼 불안정한 정치 환경 속에서 상법 개정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