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한파' 몰아친 와인 시장…뉴질랜드만 '함박웃음'

올해 와인 수입 전년比 10%↓
시장침체 속 화이트·뉴질랜드 와인 성장
내년 시장 양극화 속 숨고르기 전망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에 최근 불안정한 정국까지 더해지며 소비 위축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국내 와인시장도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수입국에서 수입 규모가 축소됐지만, 가성비를 앞세운 뉴질랜드 와인만 나 홀로 성장세를 보였다.

20일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올해 국내 와인 수입액은 10월 기준 3억8582만달러(약 56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4억2681만달러)보다 9.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입량도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와인 수입량은 475만2000케이스로 전년 동기(527만8000케이스) 대비 10.0% 감소했다. 1케이스는 750㎖ 용량의 와인 12병이 들어가며 용량은 9ℓ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와인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프랑스 와인의 수입액은 1억4616만달러(약 2100억원)로 2위인 미국(6517만달러)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탈리아가 5203만달러로 뒤를 이었고, 칠레(3809만달러)와 스페인(2222만달러)이 5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수입량에선 가성비 와인으로 평가받는 칠레가 87만1000케이스로 가장 많았고, 스페인(87만1000케이스)과 프랑스(75만8000케이스)가 뒤를 이었다.

다만 전체 수입 규모가 감소한 만큼 대부분의 국가에서 수입액과 수입량이 줄어들었다. 프랑스 와인이 수입액과 수입량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 20% 감소했고, 스페인도 수입액(-15%)과 수입량(-25%) 모두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였다. 미국 와인은 수입액 감소를 5%로 막아내며 상대적으로 선방하는 모습이었고, 가장 많은 수입량을 기록한 칠레는 수입액 감소(-4%)에도 수입량은 소폭(2%) 증가했다.

올해 와인 수입과 소비의 감소는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경제와 맥이 닿아있다. 물가 부담이 지속되고 경기 침체로 소득이 감소하면서 와인 소비에 돈을 쓸 여력이 이전보다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국내 와인시장이 고급화와 함께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의 근거 중 하나로 여겨지던 병당 단가가 꺾인 것이 대표적이다.

올해 병당 수입단가는 6.77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6.74달러)보다 하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병당 단가는 계속해서 상승했고, 올해도 그러한 추세가 이어지다가 8월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며 "내부적으로는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둔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적인 수입 규모 축소 속에 뉴질랜드 와인의 선전은 눈에 띄었다. 뉴질랜드 와인은 올해 수입액이 2028만달러(약 3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1419만달러)보다 43% 증가했고, 수입 물량 역시 31만1000케이스로 전년 동기(19만5000케이스) 대비 60% 늘어났다. 전체 순위에서도 생산량 면에서 월등한 이웃 생산국 호주를 넘어 6위로 올라섰다.

국내 와인시장 내 뉴질랜드 와인의 강세는 한식과의 뛰어난 조화와 높은 접근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뉴질랜드 와인의 강세를 주도하고 있는 건 단연 화이트 품종인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인데, 소비뇽 블랑은 프랑스 보르도가 원산지이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뉴질랜드의 대표 품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프랑스 소비뇽 블랑보다 맛과 향이 직관적이어서 초심자들도 편하게 즐기기 용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른 와인업계 관계자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적당한 산도와 깔끔한 맛으로 매운 음식이 많은 한식과 잘 어우러져 가볍게 한 잔 곁들이기 좋은 아이템이 됐다"며 "이러한 영향은 편의점에 의해 더욱 가속화됐는데, 편의점들이 1~2만원대 PB 와인을 앞다퉈 선보였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최근에는 확실히 자리를 잡은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추세는 카테고리별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레드 와인의 수입액은 2억513만달러(약 3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2억3666만달러)보다 13% 감소했고, 수입량도 242만8000케이스로 11% 축소됐다. 반면 화이트 와인의 수입액은 8102만달러(약 12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 늘었고, 수입량도 120만6000케이스로 7% 증가했다. 과거 국내 와인 소비가 중년 남성 중심의 레드 와인 일변도였다면 최근 몇 년 새 와인 소비층이 넓어지고 취향이 다양해지며 상대적으로 낮은 알코올 도수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화이트 와인 소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주춤했던 국내 와인시장은 내년에도 양극화 경향이 이어지는 가운데 숨 고르기가 예상된다. 업계에선 내년 와인시장이 고가와 저가 중심으로 중간 가격대가 실종된 U자형을 이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선 이름이 잘 알려진 고가의 유명 와인은 더욱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도 대부분의 국가가 병단가 하락을 겪었지만, 보르도와 부르고뉴 그랑 크뤼 와인 등 고급와인 산지인 프랑스(16.1달러)와 역시 고급산지인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 중심의 미국(11.4달러) 와인의 병단가는 각각 6%, 3% 오른 바 있다.

가성비를 앞세운 3만원 이하의 저렴한 가격대 와인도 좋은 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일상 속 와인 소비는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보고 있다"며 "합리적인 가격대에 부담 없이 데일리로 마실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와인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어 충분히 많은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와인 유통사 아영FBC의 1만원대 칠레 와인 '디아블로'는 올해 전체적인 시장 하락세에도 전년 대비 13% 신장률을 기록하며 최다 판매 기록을 새로 쓸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경제부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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