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을 3년째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가 한국의 계엄령 선포에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 내 러시아인들에게 집회에 참가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러시아는 2022년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적 있지만, 수도 모스크바 일대에서는 계엄령을 선포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전시 계엄령을 명분으로 대통령 선거를 무기한 연기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통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한국 정부의 계엄령 선포 직후 주한 러시아 대사관을 통해 "한국 내 러시아 국민들에게 침착함을 유지하고 당국의 권고를 따르며, 특히 정치적 성격의 대규모 행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한국 내 체류 중인 러시아 국적자는 7만1689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 중 8번째로 많다.
러시아 정부도 한국의 계엄령 선포와 정정불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계엄령 선포 이후 "한국 계엄령 선포 상황이 우려스러우며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에 "서방국가들이 한국에 제재를 가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은 조지아보다 운이 좋을 것인가"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조지아는 지난 5월 언론·비정부기구(NGO) 통제법을 정부가 강제로 제정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3년차로 접어든 러시아는 개전 이후 주요 점령지인 헤르손과 자포리자, 도네츠크, 루한스크 등 4개 지역에 한해 계엄령을 선포한 적 있지만, 수도인 모스크바와 그 인근에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 '특별군사작전'으로 한정하며 전면전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 중이다.
심지어 지난해 6월 러시아 용병기업인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군사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모스크바에 계엄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프리고진이 모스크바로 진격하기 시작한 지난해 6월24일 러시아 정부는 반테러위원회(NAC)의 권고에 따라 모스크바와 그 일대 지역에 대테러 작전체제를 발령했다. 이후 반란이 3일만에 종식되면서 바로 해제했다.
대태러 작전체제는 테러 차단 및 테러 사태 복구를 위해 도입되는 비상체제로 주요행사 금지, 교통, 이동통제 등을 실시한다. 하지만 군사 계엄령처럼 영장없이 체포를 집행할 수 있거나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자유 및 기본권을 제한하진 않는다.
현재 전시 계엄령으로 정치활동이 중단돼있는 국가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5월20일에 공식 대통령 임기가 끝났지만, 전시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선거를 중단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헌법을 명분으로 대통령 선거를 무기한 연기시킨 상태다.
CNN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헌법에 따라 원래 대선은 3월31일에 치러지고 여기서 승리한 당선인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식 임기 종료 후 새 대통령이 돼야했다. 하지만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전쟁으로 인해 계엄령이 계속 풀리지 않으면서 지난해 10월29일 치러야했던 총선도 무기한 연기됐다.
우크라이나 헌법에는 전시 계엄령 하에 국회의원 임기가 연장된다는 명시적 규정이 있으나 대통령 임기가 연장되는지 여부는 언급이 없어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 당국도 젤렌스키 정권에 정통성이 없다며 이를 맹비난하고 있다. 바실리 네벤자 주 유엔 러시아 대사는 "자신이 임기가 끝날때까지도 대선을 치르지 않기로 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결정은 불법"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