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지난 9월 '빅컷'(0.5%포인트 금리 인하)으로 금리 인하 사이클을 개시한 뒤 두 번째 인하로, 통화완화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질 예고로 '불편한 동거'가 예정된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금리 결정 못지않게 주목받았던 기자회견에서 사퇴 압박이 있어도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확인했다.
Fed는 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공개한 정책결정문을 통해 연방기금금리를 기존 4.75~5.0%에서 4.5~4.75%로 0.25%포인트 내리기로 만장일치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5.25~5.5%였던 금리를 긴축 2년 반 만에 0.5%포인트 인하한 뒤 한 차례 더 인하에 나선 것이다. 이로써 한국과의 금리 차는 상단 기준으로 1.5%포인트로 줄었다.
Fed는 이날 정책결정문에서 "경제 활동은 견조한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며 "노동시장 상황은 전반적으로 완화됐고 실업률은 상승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서는 "목표치인 2%를 향해 진전을 이뤘지만(made progress) 여전히 다소 높다"고 봤다. 지난 9월 정책결정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2%로 지속 둔화하고 있다는 "더 큰 확신(greater confidence)"을 얻었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이 문구를 삭제했다. 이와 관련해 파월 의장은 향후 금리 경로와 관련한 "가이던스를 주지 않으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파월 의장은 FOMC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런 정책 입장의 추가 재조정은 경제와 노동시장의 견조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금리가) 중립적인 수준으로 이동하면서 인플레이션의 추가 진전 역시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날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여전히 제약적"이라며 "통화정책 기조를 보다 중립적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 고용과 물가 안정이란 Fed의 이중 책무 달성을 위해 금리 인하 기조를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금리 인하 속도 조절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이제 막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피벗(pivot·정책 방향전환) 속도를 늦출 수 있음을 시사했다. 12월 FOMC 회의에서도 데이터를 보고 금리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월가는 Fed가 다음 달 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하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연방기금 금리선물 시장은 Fed가 12월 FOMC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73.5% 반영 중이다. 하루 전 69.9%에서 상승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아디타 베이브 이코노미스트는 "파월의 발언은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적이며 12월 인하가 기본 시나리오로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며 "Fed가 12월에 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추가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애나 웡 이코노미스트도 "Fed는 완전고용에 더 무게를 두고 물가안정 목표에는 힘을 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며 "Fed가 이날 금리 인하 사이클을 이어가면서 12월에도 금리를 25bp 추가로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날 시장이 가장 주목했던 것은 Fed의 금리 결정보다는, 파월 의장이 내놓은 자신의 거취에 대한 발언이었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당선인이 그동안 여러 차례 해임을 거론한 상황에서 물러날 뜻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단호하게 "그럴 뜻이 없다(No)"고 답했다. 나아가 "대통령이 Fed 의장을 해임하는 것은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동안 트럼프 당선인은 Fed의 금리 인상에 불만을 표하며 대선 승리 시 자신이 임명했던 파월 의장을 해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왔다. 지난 2018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 취임한 파월 의장의 임기는 바이든 행정부 들어 연장돼 오는 2026년 6월까지다.
파월 의장은 또 "단기적으로 선거 결과가 우리의 통화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밝혀 Fed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 가운데 미 CNN 방송은 이날 Fed가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동안은 트럼프 당선인이 파월 의장의 잔여 임기를 보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파월 의장은 차기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 관련해서는 추측과 가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현시점에서는 향후 정책 변화 시기와 내용을 알지 못하고 경제에 대한 영향도 알 수 없다"며 경제 전망 수정 방향을 밝히는 것도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다만 미국의 재정적자가 너무 크다는 지적엔 "미국의 재정정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경제에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법인세 인하 등 감세 공약이 재정적자를 확대하고 연방정부의 부채를 증가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우회적으로 차기 행정부의 정책이 미 경제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월가는 Fed가 당분간 통화완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점치면서도 파월 의장과 트럼프 당선인의 불편한 동거 속에 Fed가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관세 인상이 Fed가 간신히 진정시킨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수 있어서다. 법인세 인하 등 감세 정책 역시 재정 적자 확대, 국채 발행 증가로 이어져 금리를 밀어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을 모두 장악할 가능성이 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정책들은 손쉽게 의회 문턱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JP모건 자산운용의 앨리스 아우젠바워 투자 전략 책임자는 "Fed가 이번에 금리를 내렸고, 12월 인하하는 것도 큰 논란거리가 되지 않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며 "Fed는 트럼프 행정부가 선거 공약을 언제, 어느 정도까지 시행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JP모건의 마이클 페롤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ed가 큰 불확실성에 놓인다면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고 싶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