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영기자
국내 금융당국이 증권사 대상 단기금융(발행어음) 관련 감독 수위를 높인다.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받은 증권사들의 발행어음 조달·운용현황을 전수조사해 선제적으로 만기불일치 여부를 점검한다.
8일 정부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받은 증권사들은 올해 3분기부터 금융당국에 발행어음 관련 세부 현황을 만기별로 세세하게 보고해야 한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제도팀 관계자는 "발행어음과 관련해 유동비율은 받아보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를 만기별로 쪼개서 세부 내역을 보고받는다"라며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받은 증권사들은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가장 짧게는 ▲1일 이하부터 ▲9개월 초과~1년 이하까지 총 8개 만기별로 세분화해 분기별 업무보고서에 표기해야 한다. 조달 자금을 운용한 내역도 ▲1일 이하부터 ▲5년 초과까지 12개 만기별로 세분화해 담아야 한다. 조달·운용가중평균만기차(듀레이션)도 보고해야 하며, 만기산정이 곤란한 경우도 별도로 표기해야 한다.
발행어음은 기업이 자체 신용을 통해 1년 이하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업무다. 사실상 '여신'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은행권에서는 발행어음 제도 도입 당시 거세게 반대했다. 현재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이른바 '초대형 투자은행(IB)' 5곳 중에서도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곳은 총 4개사(한국투자·NH투자·KB·미래에셋증권)뿐이다. 삼성증권의 경우 5번째 초대형 IB이지만 발행어음 업무는 겸하지 않고 있다.
발행어음 발행·조달 만기 불일치 문제는 제도 설계 초기부터 자본시장에서 꾸준히 지적됐던 부분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이 기업금융에 우선 사용되도록 하고, 만기 1년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기업금융 의무 비율을 최소 50% 이상으로 가져가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만기불일치 사례가 꾸준히 지적되면서 제도 보강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작년 6월 정책세미나에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의 발행어음 조달·운용 만기불일치 현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비상대응계획을 수립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저신용·부동산 자산 편입도 억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짚은 바 있다. 당시 발표 자료에 따르면, 발행어음 관련 기업금융 자산구성에서 만기 1년을 초과하는 상품 비중은 최대 90%에 육박했다. 대출 상품군에서 만기가 1년을 넘긴 사례는 87.5%였다. 사모사채(83.8%)와 회사채(83.6%), 수익증권(70.5%), 기업어음(29%)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최근 발행어음이 정기예금보다 높은 보상을 제공하는 재테크 상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잔고도 40조원에 육박했다. 증권사들은 특판 이벤트부터 외화 발행어음 상품까지 앞다퉈 내놓으며 개인고객 자금 유치에 나섰다. 증권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인가를 받은 4개사의 발행어음 잔고 합산액은 6월 말 기준 38조22억원으로 2023년 말보다 4.7% 증가했다. 국내 발행어음 업무 인가 1호 기업이자 가장 공격적으로 자금을 조달한 한국투자증권의 6월 말 잔액은 15조8829억원이다.
최근 증권가 최대 관심사로 제1호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자가 떠오르면서 대형 증권사들 역시 금융당국의 이 같은 기조에 발 빠르게 대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자기자본 8조원 요건을 갖춘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유력한 후보로 점쳐진다. 금융위원회는 IMA 제도 관련 가이드라인을 손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원장이 종투사 제도 개선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하반기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며 "대형 증권사들이 초대형 IB든 IMA든 다음 인가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당국 기조를 기민하게 살피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