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피의자가 버린 물건, 별건 증거로 압수 가능…참여권 보장 불요'

피의자가 체포 과정에서 버리거나 소유권을 부인한 유류품은 별건 수사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고, 이에 대해 피압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더라도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성폭력처벌법·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7~2019년 여성 청소년과 돈을 주고 성매매를 하고, 이를 불법적으로 촬영해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제작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A씨의 부인 B씨가 컴퓨터에서 우연히 여성들의 신체를 몰래 찍은 사진을 발견해 지인과 고민 상담하던 과정에서 경찰에 이 내용을 제보했다.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A씨의 컴퓨터에 있던 몰카 사진을 압수했다.

그런데 A씨는 압수수색 직전 신발주머니에 파일 저장매체인 SSD 카드를 담아 집 밖으로 던졌다. 경찰이 이를 발견했으나 A씨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경찰관은 해당 SSD 카드를 유류물로 보고 형사소송법에 따라 영장 없이 압수했다.

A씨의 PC와 SSD 카드에서는 제보 내용 외에도 아동·청소년을 비롯한 여성들의 나체나 성관계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 등이 추가로 발견됐다. 검찰은 A씨를 재판에 넘기면서 이를 모두 증거로 삼았다.

이어진 재판에서는 경찰이 유류물로 영장 없이 압수한 자료들의 증거능력 여부가 쟁점이 됐다. 원칙적으로 수사기관은 압수수색 중 별건 범죄를 발견한 경우 새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압수수색과 저장매체 탐색 과정에서 피압수자의 참여권도 보장해야 한다.

1심 법원은 증거 능력을 인정해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에 반해 2심 법원은 영장 없이 압수된 유류품은 증거로 쓸 수 없다며 성 매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SSD 카드는 유류품이므로 피고인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고 영장 발부 범죄와 무관한 내용을 압수했더라도 위법하지 않다며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유류물 압수의 근거인 형사소송법 제218조는 사전, 사후에 영장을 받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임의제출물 압수의 경우 제출자가 제출·압수의 대상을 개별적으로 지정하거나 그 범위를 한정할 수 있으나, 유류물 압수는 제출자의 존재를 생각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정보저장매체를 소지하던 사람이 그에 관한 권리를 포기했거나 포기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경우,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압수할 때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압수의 대상이나 범위가 한정된다거나 참여권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심 판단에는 유류물 압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대법원은 경찰이 새로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임의로 압수한 PC 파일에 관해서는 2심 법원과 마찬가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사회부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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