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기자
지난주 세계 증시를 뒤흔들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의 여파가 시장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일본 증시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 포지션을 거둬들이고 있다. 엔화 가치 변동성을 헤지(위험회피)해 도쿄 증시에 투자했던 상장지수펀드(ETF)는 기록적인 자금 유출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주 금요일 고객에게 보낸 메모에서 "자사가 운용하는 롱/숏 주식 헤지펀드가 지난주 일본에 대한 전체 익스포져(위험 노출) 비율을 기존 5.6%에서 4.8%로 줄였으며, 전체 포트폴리오의 레버리지도 188.2%로 1%포인트 가까이 낮췄다"고 밝혔다. 최근 도쿄증시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인되는 롤러코스터 장세의 배경으로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 자산에 투자해왔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산이 지난달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이후 대규모 청산된 여파가 꼽힌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6일 헤지펀드를 비롯한 기관 투자자들의 엔화 순매도 포지션은 2만4158 계약으로 전주(7만 계약)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는 2023년 2월 이후 가장 작은 규모의 순매도 포지션으로 투자자들이 엔화 약세 베팅에서 손을 떼고 있음을 의미한다.
금융 결제업체 콜페이의 수석 시장 전략가인 칼 샤모타는 "지난주는 17년 만에 가장 큰 '엔화 숏 스퀴즈'가 발생한 주였다"며 "레버리지 펀드를 비롯한 투자자들이 2007년 8월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엔화 약세 베팅을 청산했다"고 분석했다. 엔화 가치 급등으로 위기에 처한 엔화 공매도 투자자들이 손실을 메꾸기 위해 엔화를 다시 매입하면서 엔화 가치 상승 폭을 키웠다는 설명이다. 찰스슈왑은 지난 7월10일부터 8월5일까지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14% 상승했다고 전했다.
엔화 가치 급등으로 피해를 본 건 헤지펀드뿐만이 아니다. 엔화 변동성을 헤지해 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위즈덤트리의 ETF(티커명 DXY)는 지난주 4억달러(약 5500억원)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2018년 이후 주간 최대 자금 유출 기록이다. 스트라테가스의 ETF 전략가인 토드 손은 "일본 주식 시장이 크게 하락하면서 매도 압력이 커졌다"며 "엔화가 계속 강세를 보이면 엔화 헤지도 그다지 의미가 없기 때문에 DXJ의 매력은 더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이달 초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부각된 이후 엇갈린 지표들이 쏟아지면서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를 얼마나 인하할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도 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은 이날 Fed가 9월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과 0.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각각 50%씩 반영하고 있다.
헤지펀드 MKP 자산 관리의 리처드 라이트번 투자책임자는 "Fed의 금리 인하 폭 전망이 50대 50이란 얘기는 불확실성도 가장 높다는 뜻"이라며 "시장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만큼 변동성은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포인트72 에셋 매니지먼트의 소피아 드로소스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증시의 갑작스러운 변동성 확대는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다"며 "투자자들은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겁낼 것이고 이는 시장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