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기자
“보통 벤처캐피털(VC)은 서울 강남이나 여의도에 몰려 있는데, 저희 하우스는 투자 전략과 맞게 혜화역 근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5㎞ 반경 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연구원이나 병원이 있죠.”
최근 서울 종로구 스케일업파트너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태규 대표의 말이다. 2020년 출범한 스케일업파트너스는 독보적인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통해 4년여간 빠른 성장세를 보인 VC로 평가받는다. 특히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 ‘스케일업 팁스(TIPS)’ 4기 운영사로 선정돼 국내 초기 스타트업·벤처 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스케일업 팁스 프로그램에선 민간 운영사가 유망 기업을 발굴해 10억원 이상을 우선 투자하면, 정부가 최대 20억원까지 후속 투자한다. 3년간 연구개발(R&D) 자금도 12억원까지 지원한다.
이 대표는 “초기 기업은 제품 판매 방법과 시기, 자금조달 방법 등을 파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연구자나 교수가 창업할 땐, 자신의 분야에서 이뤄낸 성취를 넘어설 수 있는 좋은 ‘전략가’를 만나야 한다”며 “우리의 역할은 좋은 인력들을 연결하고, 기업이 부족한 부분을 개선해 후행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창업자는 우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자체적으로 개선하거나 외부 전문가를 통해 지원받아야 한다”며 “스케일업파트너스는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창업자를 선도 전략적 투자가, 재무적 투자가와 연결해 정보 및 전문적 사업화 전략을 공유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실패 확률을 줄이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고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정보기술(IT) 산업 생태계가 싹트던 1990년대에 삼성전자에서 기술기획과 사업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2000년대 들어 IT를 중심으로 VC 투자가 활성화되자, 이 대표는 국내 VC 1세대로서 벤처창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약 20년간 코리아벤처스와 원익투자파트너스에서 2000억원 규모의 대표 펀드매니저 역할을 수행했고, 2020년엔 인공지능(AI)·바이오·소재 분야를 타깃으로 스케일업파트너스를 창립했다.
그는 “주목하는 산업 분야의 특징은 초기 사업화 단계에서 자본 조달이 힘들고, 구조적으로 전략 수립·실행이 어렵다는 것”이라며 “VC는 좋은 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내는 게 핵심 목표이고, 액셀러레이터(AC·창업기획자)는 그 좋은 기업을 초기에 발굴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사이의 공백이었다. 이를 극복시킬 작지만 강한 컴퍼니빌더(기업을 만드는 기업)형 VC를 만들고 싶었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스케일업파트너스는 시드(초기) 투자 이후 시리즈A·B 단계로 넘어가는 단계의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특히 국내 최초로 팁스·스케일업 팁스 연계 전용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한국모태펀드의 1차 정시 루키 리그에서 팁스·스케일업 팁스 연계 전용 펀드를 제안해 최종 선정됐고, 하나벤처스와 서울시 등도 출자자(LP)로 참여해 지난 6월 말 펀드 결성을 마쳤다.
이 대표는 “정부 R&D 지원이 일회성 자금 지원이 되지 않도록 기업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지원하려고 한다”라며 “기존 팁스, 스케일업 팁스 선정 기업에 스케일업파트너스가 후속 투자한 금액과, 스케일업파트너스가 직접 투자·추천한 기업에 집행된 금액을 합하면 스케일업파트너스 총 투자금의 약 85%에 달할 정도로 팁스, 스케일업 팁스 연계율이 상당히 높다”고 강조했다.
또한 “딥테크 기반의 핵심 창업 경로인 정부 출연연구기관, 대학·대학병원과 협력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국벤처투자를 메인으로 IBK, 신한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 등 주요 은행권과 서울시, 충북도, 전북도 등 지자체가 주요 LP로 참여해 약 650억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함으로써 안정적 투자 재원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단기 성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클라우드 기반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 개발기업인 ‘휴니버스글로벌’, 혁신 신약을 개발하는 ‘마이크로바이오틱스’, ‘유빅스테라퓨틱스’, ‘브이에스팜텍’ 등 헬스케어 기업에 대한 투자 사례를 꼽았다. 이와 함께 IT 분야에서도 ‘메를로랩’, ‘에이아이썸’, ‘큐비트시큐리티’ 등 스케일업파트너스가 투자한 기업이 1~2년 내 상장을 준비 중이다.
스케일업파트너스는 창업 생태계가 우수한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비롯해 대규모 산업시설과 지역 특화 사업이 가능한 충북, 전북, 대전 등 중부권까지 지역 사회와의 협력에도 적극적인 VC로 꼽힌다. 이 대표는 “지자체에 ‘어떤 기업을 들여올지부터 고민할 게 아니라, 어떤 산업을 육성할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며 “전략이 수립되면 지자체 내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우선 찾고, 외부에서도 기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를 통해 지역 특화 산업을 육성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벤처투자 시장 동향에 대해선 “벤처 투자는 10년 이상의 장기투자 분야다. 단기적인 산업 동향보다 큰 흐름에서 기술 발전 속도와 산업에 적용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더 중요하다”며 “고금리 정책이 마무리 단계로 보이는 만큼, 금리 안정화와 기업들의 자산 부채 정리가 완료되는 1~2년 후에 투자 시장이 본격적으로 밝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표는 “지금도 AI, 소재 분야는 지속적으로 투자가 진행된다. 바이오 분야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산업적 중요성이 커졌다. 현재의 옥석 가리기가 마무리되는 내년 초부터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며 “스케일업파트너스는 병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와 바이오, 로봇이 결합한 의료 분야와 협동 로봇 분야에 주목한다. 헬스케어와 의료기기 분야에서 AI와 로봇 기술을 적용한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고, 이들 기업은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빠른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간 500여억원 규모의 투자를 위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고, 2026년까지 운용자산(AUM) 2000억원을 달성할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초기 단계부터 시장 진입 단계까지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전주기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며 “아울러 국내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유니콘 기업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글로벌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