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간첩단 사건' 김신근씨 재심 거쳐 55년 만에 무죄 확정

1969년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징역 7년을 선고받은 80대가 재심을 거쳐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5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국가보안법 위반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신근씨(82)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재심 대상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봐 이를 유죄로 판단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진술의 임의성, 증거능력, 국가보안법위반죄와 반공법위반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생이던 김씨는 1966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유학하던 중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지령 서신을 전달하고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읽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김씨가 고(故) 박노수 교수에게 포섭됐다고 주장했다.

재판에 넘겨진 김씨는 1969년 재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판결에 불복했으나 2심과 대법원에서도 같은 형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 교수와 고(故) 김규남 의원은 1970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고, 1972년 7월 집행됐다.

김씨는 2022년 1월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9월 김씨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해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와 제125조의 폭행·가혹행위죄를 범했음이 증명돼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심 사유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사건을 다시 심리한 서울고법은 지난 2월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김씨가 중앙정보부로 연행된 뒤 폭행과 물고문, 전기고문을 비롯해 혹독한 강제 수사를 받다가 못 이겨 진술했으며 불법으로 구금·연행됐던 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피고인이 검사 이전의 수사기관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해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하고 그 후 검사의 조사단계에서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돼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했다면 검사의 조사단계에서 고문 등 자백의 강요행위가 없었더라도 검사 앞에서의 자백도 임의성 없는 자백이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과 공동피고인들은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구금된 상황에서 수사를 받았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그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라며 "피고인과 공동피고인들이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취지로 한 각 진술은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으로 말미암아 중앙정보부(경찰)에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한 후 그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검찰 조사에서도 계속된 상태에서 동일하게 자백하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공판심리 과정에서 검사가 위와 같은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따라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피고인 등에 대한 각 경찰 및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와 피고인 등이 작성한 각 진술서, 자술서는 형사소송법 제309조 및 제317조에 따라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나머지 증거들 역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돼 유죄의 증거로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거나 부족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일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주장하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불복했지만 대법원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한편 박 교수와 김 의원의 유족도 재심을 청구해 2013년 서울고법에서 각각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두 사람이) 수사기관에 영장 없이 체포돼 조사받으면서 고문과 협박에 의해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다"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2015년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사회부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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