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주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이사의 충실의무) 개정 논의와 관련해 오는 26일 재계를 만나 기업의 입장을 듣는다. 기업들이 이사의 형사처벌(배임죄)을 목적으로 남소(濫訴)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상법 개정에 반발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6월 26일 이사의 책임제도 개선방안 등이 담긴 '기업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가제)'를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세미나는 한국상장사협의회, 코스닥협의회, 한국경제인협회 주관으로 개최되며 상장기업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세미나 주제는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업 측 입장을 반영해 결정한다. 이 원장이 직접 일정을 챙길 만큼 신경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이 상법 개정과 관련해 재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유가 있다. 기업들이 상법 개정 시 '배임죄' 처벌 가능성이 커진다며 크게 우려하고 있어서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끼쳐도 민사소송을 통해 잘못을 가린다. 우리는 민사소송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상법 개정에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현재 상법(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근거로 이사의 충실의무를 위반했다며 등기이사(총수 일가 또는 임원)를 배임죄로 기소하는 사례가 실제로 존재한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소송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원장이 검사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위반했다며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임원들을 배임죄로 기소한 바 있다.
이 원장은 상법 개정과 관련해 배임죄 확대 가능성에 대한 재계의 우려에 크게 공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면 경영 환경이 과도하게 위축될 수 있는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원장이 공식 석상에서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경영 판단을 한 경우 민·형사적으로 면책받을 수 있도록 '경영 판단원칙'을 명시적으로 제도화한다면 기업경영에도 큰 제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속해서 발언하는 배경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12일 자본시장연구원과 증권학회 주관 세미나로 끝내지 않고 한경협 등이 주관하는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균형감 있는 공론화 과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