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기자
"지금이야말로 할아버지가 핵무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배워야 할 시기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의 손자가 원폭 공격을 받았던 일본을 찾아 군비 경쟁과 핵무기 확산과 관련해 경고했다.
연합뉴스는 4일 요미우리신문을 인용해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손자인 찰스 오펜하이머(49)가 전날 일본 도쿄 시내에서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주제로 강연을 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찰스 오펜하이머는 이 자리에서 "피폭자와 면담을 통해 원자폭탄의 영향을 직접 알 수 있었다"며 "인류에게는 원자폭탄뿐만 아니라 모든 폭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화 '오펜하이머'를 언급하며 “영화를 보며 ‘핵무기 확산을 억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며 “인류는 지금 존속 위기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막대한 군비경쟁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위기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지금이야말로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말을 들어야 할 때이고, 특히 미국·러시아·중국 등 핵 강국들은 소통과 협력을 통해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원폭 투하의 역사를 고려할 때 일본은 강대국들의 협력을 촉구하기에 가장 적합한 국가”라고도 했다.
찰스 오펜하이머는 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를 찾고, 히토쓰바시대에서 강연했다. 그는 지난 1일 피폭지 중 하나인 히로시마에서도 피폭자들과 면담 시간에서 “원폭의 영향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핵무기에 국한되는 일 없이 인류에겐 모든 종류의 폭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현재 비영리 단체 ‘오펜하이머 프로젝트’를 설립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찰스 오펜하이머의 조부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1945년 7월 인류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 실험’을 성공시켜 전쟁 종결을 앞당긴 공로로 미국에서 상찬받았다. 하지만 원폭 투하가 가져온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참상을 알게 된 뒤 깊은 고뇌에 빠졌다. 다만 1960년 일본을 찾았을 때 “원자폭탄 개발에 관여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후 핵개발 경쟁이 가속화되는 것을 우려해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하던 그는 공산주의자들과의 내통 혐의로 1954년 공직에서 추방됐다. 1967년 62세로 사망한 뒤 50년이 넘게 지난 2022년에 와서야 내통 혐의를 벗었다.
앞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연출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포함해 7관왕에 올랐다. 원폭 당사국인 일본에서는 개봉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다가 최초 개봉 이후 8개월 만인 지난 3월 공개됐다.
영화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는 독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