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간병 살인'의 비극

간병 문제에 파국 향하는 가족
사회안전망 갖추면 막을 수 있어
22대 국회서 심도 있게 논의해야

사건 현장을 다니다 보면 의외로 흔하게 보이는 비극이 바로 가족 간 살인이다. 성경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이 친동생 아벨을 죽였기 때문일까. 실제 이는 통계로도 확인되는데, 2022년 경찰청 범죄통계 기준 살인기수(미수 제외) 298명 중 70명이 ‘동거친족’, 31명이 ‘기타친족’ 관계였다.

그런데 같은 가족 살인 사건이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형이나 실태는 사뭇 다를 때가 많다. 한눈에 봐도 ‘패륜’이라 부를 정도로 악질적인 사건도 있고, 살인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대중의 안타까움과 탄식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보통 돈 문제로 발생한다. 기억나는 사건 중 하나는 2013년 기자 초년병 시절 발생했던 친부 살인 사건이다. 유흥비로 1400만원가량 빚을 지고 있던 20대 아들 A씨가 경기 수원시 집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뒤 10대 여자친구 등과 함께 전남 나주시 한 저수지까지 시신을 옮겨 유기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게 범행 이유였다. A씨가 체포돼 경찰서에 압송됐을 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얼굴을 가리던 그의 모습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반대로 후자는 흔히 ‘간병 살인’ 형태로 나타난다. 지난 16일 20대 아들을 살해한 50대 어머니 B씨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1심 판결이 나왔다. B씨는 26년 동안 지적장애와 뇌병변 등을 앓던 아들을 직접 보살폈으나 2022년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고 우울증까지 겹쳤다. B씨는 결국 아들을 살해한 뒤 자살하려 했지만 목숨을 건졌다.

창원지법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며 선처했다. 재판 과정에서 B씨에게 징역 6년을 구형했던 창원지검도 판결 이후 시민위원회를 연 뒤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게 적정하다는 시민위 의결을 존중,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가족의 재산을 노린 패륜적 범죄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그저 처벌을 강화하고 온전히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간병 살인은 다르다. 인터넷 포털에 달린 기사 댓글도 ‘안타깝다’ ‘슬프다’ ‘한숨만 나온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일각에선 간병 살인에 대한 법원의 선처가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심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간병 살인 가해자 대부분은 자살에 실패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처벌에 이른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누구나 간병인이 될 수 있고, 간병을 받는 환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간병 살인은 교제 살인, 묻지마 살인 등 다른 살인 사건과 비교해 덜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 이미 오랜 기간 발생해온 유형의 사건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간병 문제에 파국으로 향하는 가족이 있다.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비극을 두고만 볼 수는 없다. 간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됐으나 관련 논의는 이제야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다음 달 출범할 제22대 국회에서 간병 문제가 심도 있게 다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회부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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