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최근 기업대출을 급격히 늘려온 은행권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다. 경기악화에 연체율이 확대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급등한 환율에 기업들의 사업 전망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23일 원·달러 환율은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 1452.0원을 기록했다. 약 2주 전인 지난 2일(1401.3) 대비 무려 50.7원이나 상승한 것이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기도 하다.
환율이 급등하자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경영계획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 1300원대로 예측했던 환율이 1450원대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 그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단 전망이 속속 제기되면서다. 금융지주사들은 내년 환율 상단이 1400원대 후반 또는 1500원대로 오르는 시나리오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에선 금융회사의 대표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에선 금융지주회사들에 CET1 13% 이상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 통상 CET1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0.1~0.3bp(1bp=0.01%)가량 하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금융지주회사들은 아직 충분한 버퍼를 갖고 있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일부 금융지주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CET1이 13%를 상회하고 있어서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우리금융을 제외한 나머지는 CET1이 13%를 상회하고 있는 만큼 환율이 다소 오르더라도 감내할 수 있는 버퍼가 있는 셈"이라며 "1300원을 기준으로 대략 200~300원(추가 상승)까지는 13%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오히려 우려하고 있는 바는 환율급등으로 대출자산의 질(質)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입 가격이 급등하는 만큼 수입기업이나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재가공해 수출하는 수출입기업에 상당한 타격을 준다.
특히나 금융권은 지난 수년간 기업대출을 급격히 늘려왔다. 가계대출 성장세가 한계에 이르면서 기업대출 중심의 성장전략을 취해 온 까닭이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022년 말 598조2095억원, 2023년 말 630조8855억원, 올해 11월말 665조9608억원으로 매해 32조~35조원가량 급등했다.
이미 은행권에선 경기 악화에 따른 기업대출 부실화가 확대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70%로 전년 동월 말(0.55%) 대비 0.15%포인트 상승했다. 이 중 개인사업자를 제외한 중소법인의 연체율은 0.74%로 더 높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 수출입기업의 경우 환 헤지(hedge) 등에 취약한 편이고, 급등한 환율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업대출에 무게추를 둬 온 순서대로 부실채권이 증가 폭이 커지지 않겠느냐"라고 전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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