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정일웅기자
국가기술 보호망이 더욱 촘촘해진다. 다중 안전장치로 국가기술 유출범죄가 애초부터 시도되지 못할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7년간 국내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산업기술은 총 140건으로, 피해 규모는 3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특허청은 국내 기업의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기술보호 4중 안전장치’를 완성해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13일 밝혔다.
4중 안전장치는 ▲특허청의 방첩기관 지정 ▲기술경찰 수사 범위 확대 ▲국가기술의 해외유출 범죄 형량 상향 ▲영업비밀 침해에 상응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 상향 등으로 집약된다.
김시형 특허청장 직무대행이 13일 정부대전청사에서 국내 기업의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기술보호 4중 안전장치’ 시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일웅 기자 jiw3061@
최근 특허청은 ‘방첩 업무 규정(대통령령)’ 개정안 시행에 따라 방첩기관으로 신규 지정됐다. 방첩기관 지정으로 특허청은 국가정보원·법무부·관세청·경찰청·해양경찰청·국군 방첩사령부 등 기존 6개 방첩기관과 협력해 산업스파이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특허청은 특허심사 업무의 특성상 다방면의 기술 분야에서 공학박사·변리사·기술사 등 1300여명의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5억8000여개의 특허정보 빅데이터를 확보했다. 세계 각지에서 개발되는 최신 기술정보를 상시적으로 들여다보고, 분석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이를 통해 특허청은 해외에서 눈독 들일 만한 국내 핵심 기술을 선별해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게 됐다.
특허청은 앞으로 국정원 산하 ‘방첩정보공유센터’에 국내 핵심 기술 분류 정보를 제공, 다른 방첩기관에서 수집한 기술유출 관련 첩보와 상호 연계하는 등으로 산업스파이를 검거하는 데 협력할 방침이다.
기술경찰의 수사 범위를 확대해 국가기술 유출범죄에 대한 사후 처벌과 사전 예방효과를 기대하는 것도 특허청이 마련한 안전장치의 한 축이다. 기존 기술경찰의 수사 범위는 영업비밀 침해 범죄 모두에 미치지 못했다. 영업비밀을 경쟁사 등 타인에게 실제 누설하지 않았다면, 이를 모의하거나 준비한 행위만으로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사법경찰직무법’이 개정되면서 앞으로는 기술경찰의 수사 범위가 예비·음모행위 및 부당보유를 포함한 영업비밀 침해범죄 전체로 확대된다. 영업비밀 유출에 따른 사후적 처벌 외에도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사전적 수사가 가능해진다. 그동안 기술경찰은 국정원, 검찰과 삼각 공조체계로 반도체 국가 핵심기술 해외유출을 차단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수사 범위 확대로 기대되는 효과 역시 클 것으로 특허청은 내다봤다.
특허청은 해외유출 사범의 형량과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도 각각 확대한다. 올해 7월부터는 영업비밀 등의 해외유출 사범에 대한 형량(양형 기준 최대)이 해외유출의 경우 9년에서 12년, 국내 유출은 6년에서 7년 6개월로 각각 늘어난다. 특히 초범의 경우도 실형을 받을 수 있게 집행유예 기준이 강화된다.
이는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국내 기업의 핵심기술을 유출하려는 해외기업의 시도가 늘어나는 상황을 반영한 조치다. 실례로 국정원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40건의 산업기술 해외유출을 적발했다. 적발된 해외유출 기술의 피해 규모는 33조원으로 추정된다.
특허청은 8월부터 영업비밀 침해 범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도 3배에서 5배로 높인다.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5배로 정한 나라는 현재까지 중국이 유일했으며, 기술보호 강도가 높은 미국도 최대 2배까지 징벌 배상을 한다. 5배 징벌 배상은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유출 방지 대책이 될 것이라고 특허청은 강조했다.
김시형 특허청장 직무대리는 “첨단기술은 국가적 중요 전략자산으로, 이를 유출하는 행위는 경제안보를 해치는 중대 범죄”라며 “4중 안전장치는 기술유출 행위를 예방하는 동시에 사후 적발된 범죄를 엄단하는 것 모두에 무게를 둬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